영주권 제공 ‘젖은 발 마른 발’ 정책
쿠바 정부, 즉각 폐기 환영 뜻 밝혀
양국 국교 정상화 작업 마침표
퇴임 1주일 남아 무효화 가능성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퇴임을 1주일 앞두고 또다시 쿠바에 큰 선물을 전했다. 쿠바를 탈출한 난민이 미국땅에 ‘터치다운’만 해도 영주권을 제공하던 ‘젖은 발, 마른 발 정책(wet foot, dry foot policy)’을 전격 폐지한 것이다. 자국 인재 유출 통로로 악용된다는 점을 들어 쿠바 정부는 오바마 정부에게 이 정책을 폐기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이로써 쿠바 여행 규제 완화와 양국 관계 복원,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등으로 이어지던 양국 국교 정상화 작업에 마침표가 찍혔다는 평가다.
12일(현지시간)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불법이주민에게 영주권을 제공하던 쿠바 이주민 우대 정책의 폐기를 행정명령으로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에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쿠바 국민은 앞으로 미국 법에 따라 추방(removal)된다”며 “이번 조치는 즉시 발효된다”고 밝혔다.
미국과 쿠바 정부는 ‘젖은 발, 마른 발 정책’ 폐지 문제를 수개월 동안 논의했다. 하지만 폐지 소식이 알려질 경우 미국 입국 쿠바인의 수가 급증할 것을 우려, 철통보안 속에서 논의했으며, 이날 전격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해상에서 적발돼 추방조치를 받은 쿠바인에 대해 쿠바 정부도 추방 자국민을 수용하기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1995년 이전까지만 해도 비자 없이 자국에 불법 입국한 쿠바인에게 ‘피란권’을 부여하고, 미국 체류 1년 뒤에는 합법적 영주권을 제공했다. 이로 인해 매년 수만명의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밀려들자,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는 해상에서 발견된 쿠바인은 쿠바나 제3국으로 송환하도록 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마른 발, 즉 어떻게든 미국 땅을 디디면 거주 권리를 제공했지만, 젖은 발, 즉 해상에서 적발된 경우 쿠바로 돌려보낸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정책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통해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려는 쿠바인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쿠바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쿠바 정부는 국영 TV를 통해 “질서 있는 이주를 보장하고 미국과 쿠바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쿠바에 대한 선물은 적지 않았다. 2009년 쿠바계 미국인들의 쿠바 여행과 송금 관련 규제를 완화해준 데 이어, 간첩활동 혐의로 플로리다에 수감돼 있던 레네 곤살레스를 석방했고(2011),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쿠바를 제외시켰다(2015). 지난해에는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 관계 정상화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발효됐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오바마 정부의 쿠바 정책을 비판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오는 20일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서 무효화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 조치의 생명이 1주일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이민 정책에 관한 한 강경책을 예고한 만큼 이번 폐기 조치를 뒤집을 가능성은 적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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