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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종철과 박근혜, 인간의 품위

입력
2017.0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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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가혹한 고문에 희생된 박종철

폭력에 굴하지 않고 존엄과 품위 지켜

죄의식 없는 박근혜는 인간 존엄 훼손

제7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해 12월 10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작은 무대 위로 노란색 목도리를 두른 이소선 합창단 단원들이 올라섰다. 이소선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다 분신한 전태일의 어머니이니 그의 이름을 합창단 이름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이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노래를 하겠다는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날 합창단이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른 노래가 ‘그날이 오면’이다. ‘그날이 오면’은 전태일의 삶을 다룬 노래극 ‘불꽃’ 공연에서 부르기 위해 문승현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멜로디와 가사가 서정적이면서도 비장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워 ‘아침이슬’에 비견된다.

박종철도 이 노래를 좋아했다. 그는 ‘그날이 오면’을 듣고 부르며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 박종철이 스물둘 짧은 생을 마감한 날이 1987년 1월 14일, 지금부터 꼭 30년 전이다. 그때 경찰은 수배 중이던 선배의 소재를 말하라며 무자비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가했다. 물고문에 의한 질식으로 사인이 밝혀졌지만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거짓말로 진실을 덮으려 했다. 하지만 박종철의 죽음이 5개월 뒤 또 다른 젊은이 이한열의 죽음과 더불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누구는 그렇게 이룬 87년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지만 우리가 그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데 박종철의 희생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서 거창한 역사적 의미를 지우고 나면, 20대 청년이 꿈도 펼치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한 데서 오는 안타까움과 아픔이 진하게 남는다. 그가 목숨 걸고 지켰던 그 선배 박종운이 전두환 정권의 후신인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실을 떠올리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과 허무함이 밀려온다.

박종철이 당한 고문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고문을 견디다 못한 서승이 차라리 불에 타 죽는 게 낫겠다며 난롯불에 뛰어들었고 이을호가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았으며 김근태 또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실을 떠올리면, 오직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고문이 얼마나 패륜적이고 반문명적인지 알 수 있다.

경찰에 끌려간 박종철이 박종운의 소재를 실제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사실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박종철이 폭력 그것도 국가폭력에 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손발이 묶여 있어 맞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폭력 앞에 무릎 꿇지는 않았다. 적당히 누군가의 이름을 대며 고통을 모면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마저 거부했다. 박종철은 그로 인해 생명을 잃었지만 인간의 존엄과 자존을 지키고 품위 있는 인격체로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됐다.

그렇게 박종철이 목숨 걸고 지킨 인간의 존엄이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살려 달라는 학생들의 절규를 외면하고도 아무 잘못이 없다고 태연스럽게 잡아떼는 그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공감능력마저 갖추지 못한 황폐한 정신세계를 보여 주었다.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 권력을 동원하고도 거짓 변명을 일삼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국회와 검찰, 헌법재판소를 비웃다가 마침내 촛불민심마저 부정하며 국민을 조롱한 것은, 인간이라면 으레 지녀야 할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갖추지 못했다는 자기 실토일 뿐이다.

“죄의식이 없어 밥 먹듯 거짓말하는 사람에게서 인간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심리학자 황상민의 설명처럼 그는 그저 하나의 생명체일 뿐 인간의 존엄과는 거리가 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디그니티(dignity·위엄) 있고 엘레강스(elegance·우아)하며 차밍(charming·매력적)하다”고 치켜세운들 그에게 인간의 격이 생길 리 만무하다.

그러니 그런 존재를 물리치는 것이야말로 박종철이 죽음으로 이루고자 했던 인간 존엄의 회복인 것이다. 거짓이 현혹해도, 혹한이 몰아쳐도 촛불을 계속 밝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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