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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낚는 법 알려준다고? 물고기를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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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낚는 법 알려준다고? 물고기를 줘라”

입력
2017.01.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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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 늘 듣는 격언이다. 그러나 기본소득 논의는 그냥 물고기를 주자고 제안한다. 디지털 시대 대응법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 늘 듣는 격언이다. 그러나 기본소득 논의는 그냥 물고기를 주자고 제안한다. 디지털 시대 대응법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분배정치의 시대

제임스 퍼거슨 지음ㆍ조문영 옮김

여문책 발행ㆍ400쪽ㆍ2만원

시장경쟁과 능력에 따른 차별. 참 손 쉬운 말인데, 이 ‘능력’에 무엇을 얼마나 투자할 수 있는가라는 초기 조건의 문제가 늘 따라붙는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정유라를 ‘승마계의 김연아’로 만들려 했다는 것 같은데, ‘정유라의 말 타는 능력’은 어떻게 결정될까. 개 한 마리 키울 여력 없는 사람이 말 타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을까. 금수저ㆍ흙수저, 헬조선 어쩌고 하는 말들은 다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다.

가장 기본적 해결책은 초기 조건을 최대한 평등하게 해주는 일이다. 미국의, 진보도 좌파도 아닌 ‘자유주의’ 법철학의 대가라는 로널드 드워킨이 “자유의 전제 조건은 평등”이라 외치고, ‘꼴통 우파 시장주의자’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모두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을 옹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을 지지하는 보수라면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온정적’인 따위의 정치적 마케팅 용어를 우파 앞에다 굳이 붙이려 들지 않아도 된다. 말과 논리의 일관성만 따라가도 ‘아무 수식어 없는 그냥’ 우파조차 기본소득 논리를 아예 등질 수는 없다.

그래서 기본소득 논의를 다루는 ‘분배정치의 시대’는 되레 기본소득에 친화적일 것만 같은 좌파에 대한 공격 포인트가 아주 돋보이는 책이다.

먼저 책 제목부터. 번역본 제목을 ‘분배정치의 시대’라 붙여뒀는데, 미안하지만 원제가 훨씬 낫다. “Give a man a fish”.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흰소리 따윈 집어치우고 “그냥 물고기를 주라”는 얘기다. 실업자에게 기술교육이니 재취업 교육이니 하는 과정을 만들어 실업 탈출 노력을 측정하고 판단하느라 애쓰지 말라. ‘전업맘’ ‘경단녀’ ‘워킹맘’ 칸막이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허투루 돈 들이지 않으려 애쓰지 말라. 그래 놓고서는 또 ‘사각지대’는 없는 지 찾아 헤매는 짓 따윈 그만 하라.

‘인간의 얼굴’ 운운한 그런 노력들이 세심해질수록, 결국 남는 건 ‘관료제의 얼굴’뿐이다. 우리는 복지 체크 차트를 들고 찾아온 동사무소 직원에게 나의 수입과 나의 직장생활과 나의 구직활동과 나의 가족관계 등등에 대해서 얼마나 더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 없이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한 달에 얼마, 딱 입금하라는 얘기다.

이는 복지정책으로 널리 알려진 북유럽 모델의 대안으로 ‘남아공 모델’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복지, 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같은 북유럽 계열 국가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북유럽모델이 우리에게 맞을까. 생각해보면 의문이다. 단일민족 신화라는 위장막에 가려져 잘 눈에 띄지 않을 뿐, 우리의 공동체 의식은 미약하고 법과 제도 등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극히 낮다.

네덜란드 찍고 독일 돌아 스웨덴으로 향한 우리 복지 모델 탐구에서 제임스 퍼거슨 교수는 ‘남아공 모델’을 제시한다. 지난 2012년 방한 때 강연 중인 퍼거슨 교수. 여문책 제공
네덜란드 찍고 독일 돌아 스웨덴으로 향한 우리 복지 모델 탐구에서 제임스 퍼거슨 교수는 ‘남아공 모델’을 제시한다. 지난 2012년 방한 때 강연 중인 퍼거슨 교수. 여문책 제공

남아프리카 일대를 연구해온 저자 제임스 퍼거슨 스탠포드대 인류학 교수에게 남아공 모델은 되레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아공이나 이웃 나미비아, 보츠와나 같은 국가들이 뭔가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기본 소득 정책들을 도입한 게 아니다. 남아공은 흑백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진 뒤 사회불안이 급격히 증대했고, 에이즈 파장까지 밀어닥쳤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현금을 뿌려대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남아공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이런 “남반구의 새로운 사회적 지원체제는 오래되고 훌륭한 연구성과가 축적된 북반구 사촌과는 상당히 이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 내용은 책으로 음미해보길.

마지막으로 시장과 인류학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다. 아마 ‘인류학자’ ‘기본소득’이라면 마르셀 모스의 1925년작 ‘증여론’을 떠올릴 게다. 해서 우린 인류학, 하면 시장거래 따윈 없애버리고 선물과 증여로 하나되는 아름다운 도덕 공동체를 떠올린다. 좌파라는 이들의 인류학을 좋아하는 지점이자, 농경시대 ‘대동사회’란 판타지가 아직도 먹혀 드는 이유다.

그런데 저자는 ‘비사회적 시장경제’와 ‘도덕적 선물경제’라는 뿌리 깊은 이항대립 구도가 “인류학 개론을 통해 도처에서 재생산”되고 있지만, 이는 모스의 본래 의도가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20세기 초 지식인이 으레 그랬듯, 모스 역시 사회주의에 호감이 있었다. 그가 ‘증여론’을 내놓은 것은 소련 방문 뒤인데, 그래서 ‘증여론’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제 눈으로 소비에트 체제를 확인한 모스의 비판이라고 본다.

압축하자면 모스는 볼셰비키의 실수가 “경제 자체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 즉 시장을 파괴시키고자 한 행위” 그 자체라 봤다. 따지고 보면 선물과 증여라는 것도 상품 시장이 아닐 뿐 정치적, 사회적 위신을 주고받는 시장거래다. 인류학의 시각에서 보자면 “시장은 자본주의의 부산물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부터 일련의 사회적 경제적 체계 아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돌봄과 연대의 고리도 복잡한 시장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지엄하고 훈훈하신 연대와 돌봄의 영역에 시장논리라고만 하면 무조건 ‘신자유주의’로 시작하는 레퍼토리를 쭉 읊어댈 준비가 되어 있는 ‘좌파의 맹목적 비판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저자는 기본소득 논의를 할 때마다 “학계의 자장에서 현금지급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대부분 좌파 진영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이런 점을 의식해 저자는 서문에다 “사회정책을 진보적으로 재고하는 데 요구되는 것은 이론적으로 파생된 노선이 아니라 일종의 경험주의”라는 푸코의 말을 인용해뒀다. 혁명을 꿈꾸는 좌파들에겐 이런 말조차 ‘미국식 점진적 사회공학’따위로 비쳐지겠지만. 어쨌든 올해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기본소득제를 시범 실시한다. 중요한 건 이론보다 실제 결과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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