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진중권 지음ㆍ천년의상상 발행
336쪽ㆍ1만8,000원
고양이는 도도하다.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랑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베풀려고 든다. 그 매력 때문일까. 17세기 영국에선 ‘고양이는 왕을 쳐다봐도 된다’는 말이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그 고양이, 체셔가 등장한다. 아니 더 정확히는 웃음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렇기에 “저 놈의 목을 베라”는 하트 여왕의 명령은 딜레마를 낳는다. “목을 떼어낼 몸이 없는 고양이의 목을 베는 일을 불가능하다”는 반론 때문이다. 목을 베어버릴 수 없는 고양이, 사라지면서 웃음만 남긴 채 사라지는 고양이. 어쩌면, 먼저 눕고 먼저 일어선다는 풀의 서양 버전인지 모르겠다. 고양이 루비를 기르고 있는 미학자 진중권은 이리 적어뒀다. “공화국에서 백성은 고양이 같은 존재다. 공화국의 백성은 당당하게 왕을 쳐다봐도 된다. 좀 쳐다봤다고 백성의 목을 치라는 것은 몸 없는 고양이 목을 베려 드는 것만큼이나 부조리한 일이다.” ‘공화국’과 ‘왕’ㆍ‘백성’이 양립 가능한가는, 이 포스트모던한 세계에서 별론으로 치자.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