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연일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을 압박하는 가운데 1년 넘게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노숙하며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본보 지난달 21일자 11면)이 주목 받고 있다.
지킴이들은 위안부 합의가 맺어진 이틀 후인 2015년 12월 30일부터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14일 두툼한 겨울 옷으로 중무장하고 텐트 안에서 소녀상을 지키던 김지윤(21)씨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마음 편히 계실 수 있게 휴학까지 했다”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비극의 역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소녀상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폭염과 혹한을 견디는 동안 한 때 100명이 넘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던 농성장에는 이제 10여명만 남았다. 허리조차 펼 수 없는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이들은 24시간 교대로 소녀상을 응시하고 있다. 이날 당번인 지윤씨와 김소민(20)씨는 “소녀상은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라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녹록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지킴이들이 꿋꿋이 소녀상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관심 덕분이다. 농성 초기에는 각자 용돈을 모아 간편한 인스턴트 음식과 값 싼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챙겨주는 배달음식 등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날 농성장을 찾아 3만원을 놓고 간 회사원 김모(50)씨는 “송년회를 마치고 지나는 길에 텐트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적은 돈이나마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킴이들이 소녀상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가 밀실 위안부 합의서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진정한 사죄를 원하는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 7월에는 합의안을 반영한다며 ‘화해ㆍ치유재단’ 설립을 밀어붙여 할머니들 가슴에 또 다시 대못을 박았다. 소민씨는 “‘사죄 편지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망언을 듣고도 화해만 거론하는 우리 정부를 어떻게 믿느냐”며 “불합리한 합의안이 폐기되는 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최근 일본 정부가 소녀상을 두고 강경 외교를 거듭하면서 지킴이들은 긴장의 끈을 바짝 죄고 있다. 지난달 28일 부산 동구가 소녀상을 철거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설치한 일을 두고 일본 정부는 “소녀상 설치는 한일 협의 정신에 위배되며 양국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거듭 철거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전국 곳곳에서는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할 때까지 소녀상을 늘리고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가 빛나고 있다. 지난해 6월 발족한 안양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는 13일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고, 부산에서는 일시적으로 소녀상이 철거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조금 더 힘을 내 안양 소녀상 건립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며 “3.1절 정오에 소녀상 제막식을 치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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