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선 경찰 “담당자 누군지 몰라”
현재 전국에 1277명 배치 불구
대부분 상사 지시로 전담 맡아
관련 교육도 1년에 1~3회 불과
2.“모든 경찰에 관련 교육 시켜야”
담당자 부재시 다른 경찰이 조사
제도 인식 수준 낮아 현실성 부족
“세부 매뉴얼 등 마련해 대응해야”
지난해 7월 광주에 사는 발달장애 3급 정은수(22ㆍ가명)씨는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손모(21)씨 집에서 현금 14만원을 훔친 혐의로 기소돼 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원의 약식 명령을 받았다. 언어 표현능력이 크게 부족한 정씨는 사건 초기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다행히 지역의 한 발달장애인복지센터가 정씨에게 공공후견인을 연결해주면서 광주지법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정씨가 지적장애 3급인 점 등을 고려해 선고유예(경미한 범죄에 선고를 내리지 않고 2년이 지나면 기소를 백지화하는 판결) 처분을 내렸다. 정씨의 후견인인 법무사 장모(54)씨는 12일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 오지도 않았고 정씨가 믿을 만한 사람도 동석할 수 없어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2015년 11월부터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 지원법)’에 따르면 각 경찰서장은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을 배치하고 정기적으로 전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경찰청은 법 시행 직후 일선 경찰서 과 단위로 전담 경찰관을 1명 이상 지정하도록 했고, 현재까지 전국에 1,277명을 배치했다.
하지만 법 시행 1년이 넘도록 경찰의 움직임은 굼뜨다. 경찰서를 찾는 상당수 발달장애인의 상황에 대한 현장 인식이 크게 부족하다 보니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폭행당해 지난해 9월 전남의 한 경찰서를 찾은 발달장애 3급 나모(36)씨도 의사소통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나씨와 동행했던 장애인복지협회 관계자는 “전담 경찰관도 없었고 경찰은 심지어 피해 사실 진술을 도우려는 협회 직원을 제지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을 위한 수사 매뉴얼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5년 경찰청의 ‘장애인 수사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 초기 ▦피조사자의 장애인 여부를 확인할 의무 ▦피조사자가 장애인일 경우 신뢰관계자 동석 가능 사실 고지 및 실제 동석하게 할 의무 등이 있다. 발달장애인지원법 시행 이후에는 장애 확인 후 필요ㆍ요청 시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이 담당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실제 현장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서울 A경찰서 수사과 간부는 “우리 경찰서의 전담 경찰관이 누군지 모르고 관련 정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B경찰서 형사과 간부도 “발달장애 사건 접수가 종종 있지만 전담 경찰관이 활동하는 일은 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교육도 부실하다. 학교전담경찰관(SPO)이나 학대전담경찰관(APO)보다 교육 받아야 할 분량이 많지만 1년에 1~3회, 1,2시간 남짓 교육하는데 불과하다. 서울 C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기본 지식이 없는 경찰관이 상사 지시 때문에 전담을 맡는 구조인 데다, 해당 경찰관이 당직이 아니거나 현장에 나간 경우에는 결국 다른 경찰관이 조사해야 한다는 점 등으로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최근 3개월간 발달장애인 사건 수요가 없는 경우에는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지정 유보’가 가능하도록 한 규정도 전문성을 키우는 데 제약이 된다.
김용득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차ㆍ수사경험 등 세부 기준을 마련해 전담을 지정하고 명확한 수사 매뉴얼을 기반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소수의 책임만 지울 게 아니라 모든 경찰관에게 발달장애 관련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의사 표현 능력이 부족하고 때로는 돌발 행동도 하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충분한 조사ㆍ심문 훈련이 필요한 만큼 전문 기관과 적극 연계해 경찰관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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