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kg에 달하는 아이스하키 장비를 차고 빙판을 누볐던 그의 손에는 21년 동안 쥐고 있었던 스틱이 아닌 꽃다발이 있었다. 다시 빙판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도 가슴 한 편에 남았지만 이 순간 완전히 잊고 두 딸의 아버지로서 ‘제2의 인생’에 집중하기로 했다.
2009년 안양 한라에 입단한 뒤 빠른 스피드로 빙판을 질주했던 정병천(31)은 지난해 5월 은퇴를 결정했다. 이른 나이에 유니폼을 벗어 진로를 놓고 고민이 컸지만 한라홀딩스에서 손을 내밀어 일반 회사원으로 새 출발을 했다. 빙판을 떠난 지 7개월 만에 다시 안방 안양빙상장을 찾은 그는 구단이 준비한 은퇴식에서 동료들의 작별 인사에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정병천은 12일 본보와 통화에서 “솔직히 은퇴 후 다시 빙판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은퇴식까지 했으니까 이제는 못 가겠다”며 “과거 영상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고, 울컥했다. 은퇴식 때 아버지 얘기를 못해 후회됐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현역 시절 정병천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빙판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퍽을 향해 달려갔다. 또 체력 소모와 부상 위험이 큰 종목에서 7시즌 동안 4시즌을 전 경기에 출전하는 꾸준함을 자랑했다. 그는 “최고의 팀에서 뛰었지만 내가 주연이었던 적은 없었다”면서 “드라마 ‘미생’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 나에게 일어났다. 회사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자신했다.
현재 한라홀딩스 소속으로 자동차 순정품 유통 담당을 맡고 있는 그의 무기는 빙판 위에서 발휘했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성이다. 주말에는 토익 스피킹 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를 하는 등 자기계발에도 시간을 쏟고 있다. 정병천은 “취업난이 심하고, 같이 일하는 인턴들을 보면 치열하게 일을 한다”면서 “막상 일을 해보니까 나도 모르는 능력이 나올 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 능력이 정말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정병천은 “회장님에게 새해 (휴대폰) 문자를 보냈더니 ‘열심히 그리고 잘해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귀감이 되라’는 답장을 해주셨다”면서 “‘열심히’는 당연한 것이고 정말 일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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