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밥으로 산다. 답이야 여럿이겠지만 정답은 하나다. 이르면 아침 7시부터 사무실에 밀집 사육되어 있다 보면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점심시간, 그것이다. 허나 점심시간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모든 우리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없고 모든 남의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많다”로 시작되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무릎을 쳤던 글이다.
점심식사라는 이름의 고행
서울 서소문, 강남역, 논현동, 영등포, 여의도와 퇴계로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모든 회사 앞에는 먹을 만한 것이 없다. 처음에야 그나마 새롭다는 이유로 먹고 살 만해 보인다. ‘여긴 좀 서식 환경이 좋은가’ 싶다가도 길어봐야 3개월로 유효기간이 뚝 끊긴다. 갈 만한 곳은 정해져 있고 줄 서고 뱅뱅 돌고 돌아봐야 물리고 질릴 뿐이다. 구내식당? 그곳은 신비롭다. 된장찌개, 카레, 쌀국수. 뭘 먹어도 맛이 똑같은 신비로운 조리 연금술! 직원 복지는 감사하나 식비를 줄이는 대안 이상은 되지 않는다. 회사 앞에 먹을 것이 없다. 입맛은 없는데 점심시간마다 허리춤만 자꾸 뭘 먹는다. 오오 두터운 옆구리살.
또다시 새해다. 민족 대 명절, 설이 다가오고 있지만 작심삼일의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온다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3일 만에 망한 새해 다이어트, 음력 새해에 다시 시도해보면 그만. 흔히 시작하는 일이 헬스장 등록, 아니면 요즘은 새벽 같이 집이나 직장으로 매일 배달해주는 구독형 다이어트 도시락 서비스에도 손을 많이 댄다. 다이어트 도시락이라는 것이 서비스화됐어도 영 낯설지는 않다. 대체로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한 식단에는 푸른 목초지에 닭가슴살이 푸드덕대고 방울토마토 해가 뜨고 진다. 그건 지금 AI로 죽어가는 밀집 사육 닭들이 꿈꿨을 풍경일까? 적어도 어지간히 독한 맘 먹지 않고서야 지속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점심시간은 직장인의 사는 이유란 말이다.
샐러드 드레싱을 바꿔봐야, 풀의 구성을 현란하게 바꿔봐야, 단백질원을 닭 가슴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해봐도 결국엔 밍밍하고, 종국에 비리기는 정해진 결말이다. 먹는 즐거움을 다 내려 놓은 대신 알량한 몇 ㎏쯤은 살이 빠질지도 모른다. 작심삼일의 계곡을 지나 3㎏을 감량한 초월적 존재가 된 것 같은가? 그래 봐야, 닭가슴살 뛰노는 풀밭을 떠나 다시 사바 음식의 세계로 돌아오면 기어이 찾아오는 요요가 있다. 지긋지긋한 요요 현상을 겪어보지 않은 자 있다면 닭가슴살에 기꺼이 돌을 던져라.
샐러드만 먹는 건 이제 그만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오만 가지 연구결과가 있고 심지어 제각각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딱 하나 확실한 것은 평생의 바른 식습관이 결국 가장 효과적인 다이어트라는 점이다. 마른 폭설보다 진눈깨비가 더 미끄럽게 어는 것처럼 다이어트라는 건 원래 은근하게 점진적으로 할 일이다. 맛있게, 그러나 과하지 않게 먹고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다.
직장인 J씨는 회사 앞 식당에 더 이상 기대를 품지 않게 된 동시에 다이어트에도 신경이 쓰이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새해 들어서며 그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로 정기 배달 도시락을 주문했다. 샐러드의 각박한 한계를 이미 체감했던 터라 밥과 찬이 갖춰져 제대로 먹는 기분이 드는 배달 도시락을 골랐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 앞 백반집처럼 상다리 휘도록 차려 배 터지게 먹는 거한 식단은 아니다.
지난 몇 해간 수많은 정기 배달 도시락 업체들이 생겨나며 강퍅한 다이어트용 도시락과 푸짐한 일반식 도시락 사이의 니치, 즉 절충형 다이어트 도시락이 출시되고 있다. 구독형 배달 도시락 서비스를 일찍이 시작한 풀무원건강생활의 ‘잇슬림’ 역시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출발했지만 다이어트 후 유지 식단과 건강관리 콘셉트의 제품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단지 다이어트 시장뿐 아니라 간편 건강식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한 셈이다.
‘헬시’ ‘건강’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 이런 도시락들은 딱 먹을 양만큼만, 가벼운 칼로리의 저염 식단으로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영양 배분에 신경을 기울였다. 매일 메뉴에 변화를 주어 질리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를테면 도시락 업체 중 ‘마이비밀’의 매일 저염식은 현미밥 등 잡곡밥에 닭고기, 돼지고기, 해산물 등을 주재료로 단백질, 지방 균형을 맞춘 메인 요리에 버섯이나 해조류, 채소류 반찬으로 식단을 짜고 있다. ‘소녀방앗간’에서는 밥에 메인 메뉴, 반찬도 서너 가지가 따라온다. 제육볶음, 된장찌개, 간장 코다리조림, 된장 불고기, 산나물밥 같은 토속적인 메뉴가 기본이지만 푸짐하되 과하지 않다. ‘호밀’은 따로 다이어트 도시락이 있지만 별개로 한식 메뉴를 운영 중이다. 비빔밥, 국밥, 탕, 정식 등 구성을 달리하며 호화로운 식단을 짜고 있지만 칼로리는 800㎉대로 높지 않다.
대부분의 도시락 업체가 비슷한 식단을 내놓고 있다. 골고루 먹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매일 조금씩 관리하는 이런 도시락은 극단적인 몇 차례 다이어트 실패 경험자로서 J씨가 고른 절충적인 ‘플랜 B’다. 결과는? 드라마틱하게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외식할 때면 오후 내내 더부룩하던 속이 편안해졌고, 습관적인 과식에 익숙해있던 위가 안정되어 저녁식사도 먹는 양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식당을 찾아 다니지 않으니 점심시간에 여유가 생긴 것은 덤이다.
지속 가능한 건강 다이어트 도시락 5
소녀방앗간
쌀부터 잡곡류, 나물과 각종 장류 등을 청송에 위치한 생생농업유통을 통해 공급 받는다. 설탕과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래식으로 담근 장을 사용해 깔끔한 맛을 낸다. 가격은 매일 변동되며 회당 6,000~9,000원선.
Menu >> 산나물밥 도시락
생생유통조합을 통해 받은 두 가지 산나물로 지은 산나물밥에 율무 멸치 볶음, 부추 잡채, 계란말이, 매실 장아찌, 간장양념이 곁들여진다.
풀무원 잇슬림 헬시 퀴진
기본적인 한식 구성으로 건강 관리 및 체중 유지를 위한 도시락이다. 잡곡밥과 일품요리, 샐러드와 숙채, 반찬 두 가지로 구성되었으며 500㎉ 미만으로 설계했다. 주5회씩 1주 4만8,500원.
Menu >> 닭갈비볶음
닭갈비 볶음에 고사리 나물과 명이나물, 쌈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고추장 멸치 볶음이 어우러진다. 다양한 맛을 만끽하지만 섭취하는 열량은 486㎉에 불과하다.
호밀 한식
800㎉대의 가벼운 한 끼 차림. 정제염 대신 구운 소금을 사용하고 화학조미료와 첨가제, 보존료, 합성향신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주5회씩 4주 20만원.
Menu >> 새우 영양 비빔밥
잡곡밥과 맑은 감잣국에 반찬은 돈육 피망볶음, 치커리 무침, 단무지 무침, 배추김치가 곁들여지는 비빔밥 한 상 차림.
마이비밀 매일 저염식
건강과 몸매 관리 두 가지를 목표로 한 식단. 나트륨 섭취를 제한하는 콘셉트로 메인 음식과 잡곡밥, 반찬, 제철 나물, 과일과 샐러드로 구성된다. 회당 11,500원.
Menu >> 오징어 불고기
채소를 듬뿍 넣은 오징어 불고기를 메인으로 현미밥과 오이 양파 무침, 연근 견과류 조림에 배추김치로 구성돼 있다. 파인애플을 곁들인 샐러드도 따라온다.
옹가솜씨 도시락 by 배민 프레시
퓨전 한식을 콘셉트로 메인 요리에 어울리는 세 가지 반찬과 밥으로 영양 균형에 맞춰 구성돼 있다. 양념 맛이 강하지 않고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 회당 8,500원.
Menu >> 토마토 해물스튜
토마토를 베이스로 새우, 조개, 홍합을 넣고 자박하게 끓인 스튜가 메인. 단호박밥과 미니양배추, 당근 피클과 참깨 드레싱 두부 지짐이, 통마늘 호두조림이 반찬으로 따라온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Afr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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