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있을 때 집 크기 줄이고
저축 늘려야 노후 파산 면해
산업사회는 은퇴가 없는 사회
스스로 공부해야 적응력 생겨
현직 소방관인 아빠가 이메일을 보냈다. 아이 둘 사교육비 감당하느라 허리가 휜단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때문에 결국 곤경에 빠진 부모, 무너진 가정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중산층 붕괴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마치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것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절실하게 외치고 있는 이를 5일 만났다. ㈜한국재무설계 오종윤(50) 대표다.
“20% 저축해야 노후 파산 면해”
_중산층 위기의 원인을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서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말 살 수 없는 소비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소비의 사회화라고 하는데 소비 만능주의에 빠진 거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문제의식도 못 느껴요. ‘내가 뭐? 차 없는 사람이 있어? 외식 안 하는 사람 있어? 사교육 안 시키는 사람 있어? 집 없는 사람 있어? 대출 없는 사람 있어?’ 그러면서 모든 가정이 낭떠러지를 향해 가고 있는 거죠.
외환위기(IMF) 당시 사실 정부와 기업이 내세운 고도의 전략에 국민들이 말린 겁니다. 그 이전에는 주로 기업에 투자해 경제를 성장시켰죠. 가계는 저축을 하고 기업은 투자를 하고 정부는 균형재정을 맞추는 전략이었거든요. 그런데 IMF 때 대출이 많은 기업과 대출해준 은행이 함께 부도가 나자 은행들이 깨달은 거예요. ‘기업에 대출하면 은행이 망하는구나.’ 그때부터 위기 탈출의 수단으로 소비가 미덕이라는 인식을 계속 심어 줍니다. 박제가의 ‘우물론’을 들먹이고 소비해야 경제가 돈다는 논리를 퍼뜨립니다.
저축 캠페인도 사라집니다. 이제 저축을 많이 하면 이기적인 사람인 거죠.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자기만 챙기는. 그리고 갑자기 모든 은행이 개인 대출을 적극적으로 해줍니다. 주택을 담보로 100%까지. 너도나도 집을 막 사고 2~3년 사이에 두 배, 심하게는 3배까지 집값이 오릅니다. IMF 이전에는 평균 1억원 정도였던 주택 가격이 2005년, 2006년이 되면 보통 3억, 5억원이 됩니다.
사람들이 아주 이상한 게 집값이 1억원인데 2,000만원짜리 차를 사면 욕을 했어요. 사회적으로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비난하는 문화가 있었었거든요. 그런데 3억, 5억원이 되고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서울 강남 아파트 가격이 대부분 10억원이 넘어 가니까 2,000만, 3,000만원짜리 차가 우습게 보이는 거죠. 10억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이 소형차를 사면 쪼잔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올라가는데 그까짓 것 하면서.”
_정말 과소비가 중산층 붕괴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기 어려운 소득 측면보다 개인이 결정하는 소비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94년 20.5%였던 가계 순저축률이 2011년에 2.7%까지 떨어집니다. 베이비붐 1세대인 55년생들이, 보통 사무직 정년인 50세가 된 2005년 이후 대거 파산합니다. 비싼 과외까지 시켜 대학에 보냈는데 학자금을 댈 수가 없어요. 또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요. 2005년 학자금 대출 잔액이 5,000억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20조원 수준입니다. 지금 대학생 대부분 파산이에요.
55년생으로 대변되는 분들이 집을 팔기 시작하는 2007년부터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데 정부가 또 나서서 막습니다. 재건축을 명분으로 부동산시장을 교란시켜 오히려 집값을 지난 2년 동안 올려놨어요. 250만 가구를 분양시켜 놨어요. 우리나라 전체 1,800만 가구의 15%, 엄청난데 2020년까지 실제 입주하면 공급 과잉 상태는 더 심각해지겠지요. 자기 돈 가지고 분양 받으면 누가 뭐라 그래요. 그런데 빚 내서 집 사라고 금리 낮춰 놨죠.
하지만 이제 한계 상황까지 온 것 같아요. 아마 앞으로 대출 받아 산 집값이 떨어지는 2~3년 사이에 정말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 같아요. 완전히 사람의 의식이 바뀔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을 것 같아요. 55년생부터 59년생이 모두 2019년까지 60세가 넘어가잖아요. 소득 절벽 앞에서 대부분 파산하겠지요.”
_아무리 어려워도 파산만큼은 피해야 하는데 대부분 수입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쪽으로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조언하는데 집 크기를 반으로 줄여야 됩니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의 중산층 가정 어디를 가 봐도 보통 8평, 아주 큰집이 12평이에요. 물론 집의 크기를 줄인다는 것은 거의 죽음과도 맞바꿀 정도로 힘든 거예요. 하지만 은퇴하고 소득이 줄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만 파는 게 아니라 옆집도 그렇고, 결국 집을 사 줄 사람이 없는 거잖아요.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수입이 있을 때 의지를 가지고 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당하는 거예요.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럴 때 의지를 가지고, 굉장한 용기와 철학을 가지고 해내야 하는 거예요. 이걸 해내고 나면 과정은 엄청나게 힘들어도 가정경제 전체가 굉장히 건강해집니다. 제가 퇴직을 1, 2년 앞둔 분들에게 말하면 10년 전에 했어야 하는데 너무 절감한다고 하세요. 고위 공직자든, 대기업 임원이든 상관없어요. 또 안전한 재무 구조는 부동산 대 금융 자산이 5대 5예요. 30대는 100%가 부동산이었다가 은퇴할 때쯤이면 5대 5로 가야 돼요.
지금 즉시 하지 않으면 결국 파산합니다. 젊은 사람 100만명이 일해 노인 30만명을 먹여 살리던 시절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의지하기 어려운 상황도 예상해야 합니다. 지금 국민연금을 가장 많으면 37만원 내다가 60세 이후 130만원을 받죠. 그런데 수령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원이 신규 가입하고 12만~16만원 정도 내는데 그런 신규 가입자 한 사람이 130만원 수령하는 두 명의 연금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거예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입니다.
건강보험도 사정은 마찬가지겠지요. 현재의 소비냐, 생애주기 소비냐. 지금 쓰는 것처럼 죽을 때까지 소비할 수 있느냐. 저축의 학문적 정의는 미래의 소비를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는 행위입니다. 4인 가족의 경우 저축률이 20% 미만이면 현재보다 미래의 소비가 줄 수밖에 없고 5% 정도면 파산인 거고요. 50% 수준이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요. 적어도 20% 정도 저축해야 파산을 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식 걱정할 때가 아니다”
_다른 거 다 줄여도 아이 사교육비만큼은 못 줄이겠다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소비라는 것은 삶의 철학, 가치관을 담아요. 질문을 해봐야지요. 왜 꼭 사교육비를 써야 하나, 사교육을 시키면 아이의 미래가 행복할까, 나와 우리 가족은 행복해지는 걸까. 사교육비만큼 저축이 줄고 대학 갈 때쯤 퇴직해 소득이 줄어요. 조금 지나 결혼할 때가 와요. 지금과 같은 지출 구조로 갔을 때 감당할 수 있을까, 아주 진지한 고민을 해야 돼요. 부모 자신을 걱정해야지 아이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급격한 구조조정이 계속되는 앞으로 20년,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할 40, 50, 60대가 문제인 겁니다.
사실 아이들은 걱정할 게 없어요. 부모 세대가 100만명 살다가 죽으면 집이 50만채가 생기죠. 아이들은 40만명 수준이니까 집이 20만채밖에 필요 없어요. 30만채 남아요. 사회의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일자리 문제도 해결되고 임금도 올라갈 거예요. 최근 일본에서 나타난 현상인데 의지와 열정이 없는 게 문제이지 희망하는 사람 대부분이 취업할 수 있어요. 어느 자리에서든 일할 수 있어요.
100만명이 일하다가 나가는데 절반 이하의 세대가 왜? 수요와 공급에 철저하게 따르거든요. 지금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 걱정은 내려놔도 돼요. 아직도 고성장기의 추억에 빠져있는 부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은 지금 망했거나 망해 가고 있거나 얼마 안 가서 망할 거예요. 지금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그런 데 가는데 다 망할 데 보내는 거예요. 2050년을 보는 다보스포럼 관련 책을 한 번만 봐도 지금처럼 공부시킬 필요 없구나, 그게 경쟁력이 아니구나, 깨달을 수 있어요.
대기업에 가서 갑의 의식을 갖게 되면 생존력이 뚝 떨어져 잘리면 끝이에요. 중소기업에 들어가 근근이 사는 사람은 평생 일을 하면서 살아가요. 농경사회는 은퇴가 없지만 산업사회는 은퇴가 있어요, 70년대 남자 평균수명이 59세였어요. 정년이 60세니까 노후 자금이 없어도 됐어요. 지금 정년은 50세로 당겨지고 수명은 100세로 늘었어요. 40년 이상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끝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한답시고 자립심과 적응력을 갉아먹는 사교육에 의지하는 부모들, 정말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기가 들어온 산골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 할머니와 한 방에서 지낸 6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한 오 대표. 금요일마다 새벽 5시에 형제 부부가 모두 만나 독서 토론을 하면서 아이 교육의 방향을 잡아온 그였기에 이미 금수저가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사교육 없이 흙수저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된 파산의 길로 가는 줄도 모르고 불안해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부모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첫째, 반드시 생애 설계를 하라. 둘째, 일시금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대학 학자금, 결혼 자금, 노후 자금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당장 1만원이라도 저축을 시작하라. 셋째, 절대 빚을 지지 마라. 넷째, 4인 가족 기준 저축률 20%를 고수하라. 다섯째, 모르는 곳에 투자하지 마라. 여섯째,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지 마라.
소방관 아빠는 이메일에서 사교육비 줄이는 걸 아내가 극구 반대한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부부가 꼭 생애 설계에 합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장동력 회복과 경제민주화가 국가 경제의 과제라면 오 대표의 충고는 가정경제 살리기에 꼭 필요한 자구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대책도 없으면서 오 대표의 충고를 귓등으로 듣는 부모들의 미래가 보인다.
중대형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 그리고 좋은 학벌의 아이들. 그러나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가고 아이는 여전히 취업준비생인 모습을 보면서 좌절할 것이다. 소형 아파트에 경차, 아이는 중소기업에서 생산직으로 일하지만 화목한 가정의 친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게 뻔하다.
행복한공부연구소장
▦오종윤 대표는
-1967년 전북 순창 출생
-서울대 생활과학(가계재무전공) 박사
-현 한국재무설계 대표이사, 한국재무설계(FP)학회 이사, 한국소비자정책학회 이사, 한국금융소비자학회 이사
-‘20년 벌어 50년 먹고 사는 인생설계’, ‘인생의 절반은 부자로 살자’, ‘서른 이후 50년’, ‘현금으로 정면돌파’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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