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총수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9년 만에 수사기관의 ‘포토라인’에 섰다. 2008년 2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의혹으로 조준웅 특별검사팀에 소환조사를 받았던 이 부회장이 12일 뇌물공여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박 특검팀은 이 부회장 사전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날 오전 9시30분 특검팀 출석 요구 시간에 정확히 맞춰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나타난 이 부회장은 ‘최순실씨 일가의 지원을 직접 지시했느냐’는 등의 취재진 질문에 “이번 일로 저희가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린 점 국민께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는 짧은 답만 남긴 채 조사실로 향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박근혜 대통령의 부탁으로 최순실(61·구속기소)씨 일가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지원 계약 등을 승인 혹은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은 박 대통령과 최씨가 추진했던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의 출연금을 냈고,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 지원 목적으로 최씨 소유 독일현지 법인인 비덱스포츠와 220억원대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특검팀은 이 출연과 지원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직결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의 찬성을 이끌어준 최씨 측에 건넨 뇌물로 보고 있다. 앞서 검찰은 재단 출연금을 청와대 등의 압박에 따른 결정으로 봤지만, 특검팀은 이마저도 뇌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출연금을 낸 다른 기업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지 여부는 미정이다. 특검팀은 삼성이 회사 자금을 최씨 일가 지원과 재단 출연에 사용한 것에 배임·횡령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삼성은 “박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부정한 청탁에 따른 뇌물로 볼 수 없으며 이 과정은 이 부회장과도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31일 구속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조사해 최씨와 삼성 간 ‘검은 거래’가 대가성 있는 거래였다는 뇌물 혐의를 입증할 다수의 물증을 확보했다.
특검팀은 최근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로부터 제출 받은 최씨 소유 태블릿PC가 시중에 출시(2015년 8월초)되기 전부터 사용됐다는 사실도 새로 밝혀냈다. 이에 대해 삼성은 “특검이 공개한 제품 뒷면에 하얀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이는 양산품이라는 뜻”이라며 “출시 전 최씨 측에 제공될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 조사를 마치는 대로 사전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