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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기슭 ‘피란민 판자촌’ 젊은 예술가들의 둥지로 새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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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기슭 ‘피란민 판자촌’ 젊은 예술가들의 둥지로 새 단장

입력
2017.01.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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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때 실향민들이 이룬 마을

개발 소외되며 옛 달동네 모습

싼 임대료에 젊은 상인ㆍ예술가들

신흥시장 부근 모여들며

SNS 타고 핫플레이스로 부상

서울시 ‘도시재생’ 지원 나서

해방촌 오거리에서 용산로2가 주민센터를 등지고 바라본 해방촌 전경. 멀리 피란민의 안식처 역할을 하며 해방촌 구심점 역할을 해 온 해방교회가 보인다. 용산구 제공
해방촌 오거리에서 용산로2가 주민센터를 등지고 바라본 해방촌 전경. 멀리 피란민의 안식처 역할을 하며 해방촌 구심점 역할을 해 온 해방교회가 보인다. 용산구 제공

“이곳에 오면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어요. 날 것을 세련되게 재활용한 덕분에 과거 속에 현재가 잘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랄까.”

12일 서울 용산구 용산로2가 해방촌오거리에 인접해 있는 전통시장인 신흥시장 내 한 카페에서 만난 직장인 김아형(37)씨는 소위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해방촌과 신흥시장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용산로2가동 남산기슭(33만2,000㎡)에 위치해 ‘남산 아래 첫 마을’로 불리는 해방촌은 굳이 복고 트렌드를 작위적으로 연출하지 않아도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이북 사람과 피란민이 정착하면서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일푼으로 모여든 실향민들은 남산 아래 판잣집을 지어 마을을 이뤘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미군 군용식량(C레이션) 박스와 판자 등으로 손바닥만하게 지은 소위 ‘하꼬방’은 해방촌의 상징과도 같았다.

해방촌은 그 후로도 오랜 기간 각종 개발에서 소외돼 온 까닭에 지금도 여전히 노후한 주택과 지붕이 내려앉은 폐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도 최고고도제한으로 대부분이 4층 이하다. 1943년 일제가 경성호국신사를 지으면서 참배길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신사의 흔적은 사라진 채 외따로 남겨진 108하늘계단, 피란민의 안식처 역할을 한 해방교회(1947), 해방촌 성당(1955) 등 역사적인 공간도 그대로 살아 있다.

하지만 이처럼 1980년대 달동네의 모습이 남아 있는 해방촌 오거리에서 경리단길 맞은편 신흥로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수제 햄버거와 피자,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이국적인 음식점과 펍, 바가 늘어선 신흥로는 경리단길과 더불어 이태원 상권 영토 확장과 함께 어느새 서울의 주요 상권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서울 한복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눈에 띄는 신흥시장 일대가 유명 방송인 노홍철씨를 비롯해 젊은 창업자들이 둥지를 틀면서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한때 해방촌의 상징이었다가 슬럼화된 신흥시장 일대는 서울시의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도 선정돼 해방촌 오거리 인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SNS 타고 시작된 마을의 변화

해방촌 신흥시장 내 카페 오랑오랑 옥상은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경치로 ‘해방촌 루프탑 카페’라는 별칭을 얻었다.
해방촌 신흥시장 내 카페 오랑오랑 옥상은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경치로 ‘해방촌 루프탑 카페’라는 별칭을 얻었다.

해방촌 정착 1세대는 막노동을 하거나 불법 사제담배를 만들어 팔며 억척같이 생계를 유지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일명 ‘요꼬’(스웨터 가내 수공업)로 불린 편물업이 각광 받으면서 해방촌도 제법 번창했다. 한때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30~40곳 정도의 니트 제조업체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의류산업이 발달하고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린 까닭이다.

해방촌 니트 산업 흥망성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 바로 신흥시장이다. 한때 니트 산업 중심지였지만 현재는 곳곳에 빈 점포가 눈에 띈다. 젊은층이 지역을 빠져 나가고 인구가 고령화하면서 상권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해방촌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5.1%다. 서울시(12.2%)와 용산구(14.4%)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보다 높은 수치다.

그래도 2∼3년 전부터는 젊은 상인과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신흥시장에 자리를 잡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요즘 젊은 창업자들은 낮은 임대료를 찾아 서울의 골목 곳곳을 파고든다. 서울 주요 상권인 이태원에 인접해 있으면서 경리단길보다 임대료가 싼 해방촌은 그런 면에서 잠재력이 크다.

신흥시장 내 카페 오랑오랑을 운영하는 조성현(32)씨는 “언덕배기에 있어 접근성은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낮은 임대료가 매력적이었다”며 “SNS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옥상이 있는 2층 주택을 개조한 이 카페는 옥상에서도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경치를 감상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어 SNS상에서 ‘해방촌 루프탑 카페’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건물은 한때 보신탕집이었다가 5~6년 간 빈 점포로 방치됐던 곳이다.

주말에만 문을 여는 노홍철씨의 ‘철든책방’도 신흥시장을 향한 젊은층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다. 평일인 이날 철든책방 앞에서는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서점 내부를 엿보는 젊은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해방촌은 2000년대 들어서까지도 남산에서 한강까지 생태 녹지축을 조성하는 ‘남산 그린웨이’ 사업이 부동산 시세만 들썩이게 한 뒤 흐지부지되는 등 도시개발에서 한참 비켜 있었다. 그런 해방촌 개발이 젊은 창업자들을 통해 자생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 도시재생에 4∼5년간 100억 지원

해방촌 상징 중 하나인 108하늘계단은 해방로 테마길 사업에 포함돼 ‘역사문화탐방로’로 개발된다. 용산구 제공
해방촌 상징 중 하나인 108하늘계단은 해방로 테마길 사업에 포함돼 ‘역사문화탐방로’로 개발된다. 용산구 제공

여기에 서울시도 힘을 보탠다. 해방촌은 서울의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 중 하나로 선정돼 4~5년에 걸쳐 최대 100억원을 지원 받게 됐다. 신흥시장 활성화와 공방ㆍ니트산업 지원, 해방촌 테마길 조성, 노후주택ㆍ파손도로 정비를 통한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 등이 골자다.

우선 신흥시장은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는 등 환경을 개선하고 젊은 예술인들의 공방과 청년 창업 공간 등을 갖춘 ‘아트마켓’으로 만든다. 해방촌 테마길은 108하늘계단에서 신흥시장을 거쳐 남산으로 연결되는 ‘역사문화탐방로’, 신흥로 생활가로의 가로 시설물을 정리한 ‘해방촌 생활가로’ 등을 단계별로 만든다.

해방촌 도시재생은 주민 참여를 강조한 ‘서울형 도시재생’을 표방한다. 서울시는 2014년 도시재생 실행방안 용역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이후 주민설명회 등을 열고 2015년 3월 주민과의 현장 접점을 늘리기 위한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열었다. 뒤이어 주민협의체도 출범했다. 작년 10월말 기준 585명이 가입했다. 작년 7월에는 서울시와 용산구, 해방촌 주민협의체, 동국대 간 해방촌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한 공동협력 협약도 체결됐다.

반세기 넘는 해방촌 역사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이번에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도시재생에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신흥시장에서 50년 넘게 점포를 운영해 온 박일성(75)씨는 “아직은 취미 수준으로 보이는 젊은 예술가들의 공방이 신흥시장의 실질적인 활성화로 이어질지 의문”이라며 “당장 언제라도 편하게 들러 식사할 수 있는 동네맛집이 부족한 불편부터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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