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최대 경쟁대상으로 상정해 집요하게 견제하고, 인권보다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필요하면 군사력 사용도 마다 않는 ‘실리 외교’가 차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외 정책으로 굳어지고 있다.
렉스 틸러슨 차기 국무장관 내정자는 11일(현지시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내건 ‘미국 우선주의’ 외교를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러시아와의 조건부 협력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권중시 외교와의 결별로 구체화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틸러슨 내정자는 “미국은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는 수단과 윤리적 기준을 갖춘 지구 상의 유일한 ‘수퍼 파워’이며, 우리가 이끌지 않으면 세상은 더 깊은 혼란과 위험 속에 빠져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무장관에 취임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라는 담대한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을 선보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따른 의원들의 질문으로 이날 청문회에서는 양적으로 러시아 관련 발언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틸러슨 내정자의 강경 발언은 중국에 집중됐다. 대북 압박 동참은 물론이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도발적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틸러슨 내정자는 북한 문제와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등을 거론하면서 “중국은 ‘믿을 만한 파트너’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 “남중국해에서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도록 명확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하나의 중국 원칙부터 통상마찰 등 중국과의 다양한 갈등 전선에서 이전보다 훨씬 높은 압박을 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국은 틸러슨이 중국을 겨냥한 날선 발언을 내놓자 12일 곧바로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루캉(陸慷) 대변인은 “미일 안보조약은 냉전시대 산물이며 중국의 영토주권과 권익을 파괴해선 안된다”라며 “남중국해와 관련해서는 중국이 주권 범위 내의 활동을 할 권리가 있으므로 거론할 바가 못된다”고 강조했다.
틸러슨 내정자는 친 러시아 성향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예상과 달리 겉으로는 러시아에 각을 세웠다. “미국 이익에 반대되게 행동했으며, 미국에 위험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입장과 달리 러시아의 크림반도 주권을 부정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장관 직에 오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뜻에 따라 러시아와의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가 예상되는 질문에는 확답을 하지 않은 채 여운을 남겼다. 마르코 루비오(공화ㆍ플로리다) 의원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 범죄자’로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또 “미국 정부의 대 러시아 제재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라”는 요구가 나오자,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와 관련, “틸러슨이 여전히 러시아를 중시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독재 혹은 비민주적 국가의 인권개선을 외교 목표로 삼는 대신 미국 이익 관철의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러시아와 필리핀, 사우디 등과의 관계에서 인권을 강조할 것이냐는 질문에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반면 쿠바에 대해서는 “외교관계 복원 과정에서 쿠바가 인권에 대한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며 “이는 쿠바인들과 미국인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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