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에는 필연적으로 원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지역이 발전하고 외관이 바뀌면 마을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외지인의 소비 대상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해방촌 마을기록단은 마을 가치를 보존하고 싶은 주민 모임이다. 30여명이 모여 사진수집, 영상기록, 구술채록, 물품수집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방촌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다. 골목이 활성화되더라도 해방촌 본래 모습은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서울시 지원을 받는 마을공동체 주민제안사업으로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활동은 예컨대 이런 식이다.
1950~60년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님이 번호표를 들고 몇 백 미터씩 줄을 서 기다렸다는 ‘진달래미용실’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해방촌의 미용실이라는 미용실은 다 찾아 다닌다. 미용실 종사자를 인터뷰하고 미용실에서 일어나는 일 등을 채록해 임대료, 권리금 변화를 비롯한 해방촌의 과거를 기록한다.
또 다른 기록자들은 마을사를 추적하기 위해 해방촌 주민 개인사를 되짚는다. 이들은 외부적 요인 때문에 빠르게 변해가는 마을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오래된 슈퍼마켓 주인을 인터뷰한다. 인터뷰를 통해 해방촌 번화가인 오거리에 위치한 편의점이 도심에서 늘 보던 여타의 편의점과는 다른 함의를 지님을 깨닫는다. 수십 년 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동네 토박이 역할을 했던 슈퍼마켓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이를 대체한 게 편의점이기 때문이다.
건축가이자 마을기록단 활동가인 허길수(39)씨는 “‘맛집으로 뜨는 동네’, ‘젊은 예술가가 모여드는 예술마을’ 같은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가 아닌 마을을 제대로 알리는 창구가 되고 싶다”고 활동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또 “주민들이 배제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지역에 머물 수 있는 권리, 이른바 ‘도시에 대한 권리’는 지역 자산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덧붙였다.
이들은 이렇게 모은 기록물을 다음달 18일 전시회 형식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허씨는 “많은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주민참여’라는 이름으로 주민의 암묵적 동의를 이끌어내고 있지만 집주인과 상가 주인만이 아닌 세입자와 임차인도 중요한 지역 구성 요소라는 점이 종종 간과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이 지역 주민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마을기록단은 지역 주민 모두를 아우르는 도시 활성화를 기대하며 오늘도 부지런히 마을을 기록 중이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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