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내 옷을 준비해라. 빨리. 시간이 없어. 거기 없니? 끌레르, 끌레르!” “죄송합니다. 마담. 마담이 드실 차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무대 한 가운데 선 두 배우는 국어시간 여중생이 책을 읽듯 대사를 내뱉으며 한껏 과장된 몸짓을 선보인다. ‘무슨 연기를 저렇게 못하나’ 싶은 찰나, 한 배우가 이렇게 외친다. “빨리 하자. 마담이 들어오겠다. 이것 좀 도와줘. 벌써 끝났어. 끝까지 못했구만” 그렇다, 이들은 ‘연극 속 연극’을 하고 있었다.
마담을 모시는 두 하녀, 쏠랑주와 끌레르는 마담이 없는 밤이면 그녀의 옷을 꺼내 입고 역할 놀이를 한다. 허영심 많은 끌레르가 ‘마담 되기’를 통해 자신의 품격을 지키려 한다면, 가슴에 칼을 품은 냉철한 언니 쏠랑주는 ‘마담 살해’로 숭고의 지점까지 나아가려 한다. 연극은 언제나 마담 살해를 결말에 두지만, 마담 역에 취해 있는 동생 끌레르의 감성 충만한 ‘오버’ 탓에 살해는 언제나 실패한다. “당신에겐 꽃이 있고 내겐 수채통이 있어요. 나는 하녀에요. 당신은 날 더럽힐 순 없어요. 당신은 천당에서까지 날 이길 순 없어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연하는 ‘하녀들’은 60년 전에 발표된 장 주네의 원작을 다분히 ‘연극적인 방식’으로 재현한다. 무대는 옷과 화장대, 소파와 재봉틀로 마담의 공간과 하녀의 공간을 나누었다. 두 자매는 언제나 이들 공간의 사이, 소파에서 연극을 펼친다.
하녀 자매는 현실과 상황극을 넘나들며 울분과 분노를 토해낸다. 마담의 방과 자신들의 부엌을 넘나들 때마다 이들의 인격과 감정은 돌변하지만 마담 앞에서는 감정을 숨긴 충실한 몸종이 된다.
실제 등장한 마담은 하녀들의 연극에서보다는 온화하고 너그럽다. “랑방이 직접 디자인해 준” 드레스를 비롯해 모든 걸 하녀들에게 물려주겠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름도 구분 못 할 만큼 이들에게 무심하고, 베푸는 것이 지배계급의 특권인 양 모욕적인 ‘갑질’도 서슴지 않는다. 마담 역의 김소희는 예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하녀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무죄석방을 어떻게 아니? 재판소에 자주 드나드니?” 같은 말로 되물을 때 관객을 소름 돋게 하다가, 쏠랑주에게 주었던 모피 코트를 도로 빼앗아 입는 코미디 연기를 펼치며 웃음도 선사한다.
극단이 붙인 ‘배우를 위한 연극’이란 부제답게 새 배우를 발견할 수 있는 무대다. 입단 6년이 된 김아라나는 매끄럽고 탁월한 목소리, 폭 넓은 역할을 맡을 만한 개성 있는 마스크로 천의 얼굴, 쏠랑주 연기의 정석을 선보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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