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를 단 20년 동안 출전한 동계올림픽만 네 차례. 스키를 타고 설원을 누비는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마친 뒤 결혼을 했고, 2012년 딸을 낳아 엄마가 됐다. 출산 후 주위에서 은퇴를 예상하기도 했지만 ‘엄마’의 이름으로 다시 설원으로 돌아왔다.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간판 이채원(36ㆍ평창군청)은 30대를 넘기고도 여전히 국내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후배들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채원이 전국동계체전에서 획득한 금메달은 63개에 달한다. 체전 최우수선수(MVP)도 세 차례나 차지했다.
메달 수와 MVP 선정 횟수는 국내 최다 기록이다. 평창 대화중학교 3학년 때인 1996년 처음 동계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낸 뒤 꾸준히 설원을 누빈 성과다. 동계체전에 빠진 적은 출산 휴가로 쉰 2012년 딱 한 차례다. 국가대표로는 1997년에 발탁됐다.
이채원은 ‘설원의 마라톤’에서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로 철저한 자기 관리와 탁월한 지구력을 꼽았다. 현재 일본 삿포로에서 전지 훈련 중인 그는 최근 본보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체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회복을 잘하는 것도 신경 쓰고 있다”며 “평소에 스트레칭을 많이 하고, 회복에 좋은 한약과 단백질로 보충한다”고 밝혔다. 하루 훈련 일정에 대해서는 “새벽, 오전, 오후, 야간 네 차례 훈련을 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초등 4학년 때 육상을 했던 이채원은 강한 지구력으로 인정 받았다. 그러다가 주위 권유로 중학생 때부터 스키를 탔다. 다른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 크기 정도 작을 만큼 체격 조건이 불리하지만 지구력 하나로 버텨왔다. 또 출산 후 운동을 하니까 “심폐지구력이 더 좋아진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었지만 국제 대회에 나가면 늘 세계의 높은 벽을 마주해야 했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 크로스컨트리 여자 10㎞ 프리스타일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결과물이 없었다. 하지만 더욱 혹독한 훈련으로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최고의 기량을 유지했다.
그 결과 지난달 국제스키연맹(FIS) 레이스 핀란드 대회 크로스컨트리 10㎞ 프리스타일에서 정상에 올랐다. “크로스컨트리는 연륜이 쌓이면 더 잘하는 종목”이라고 자신했던 이유를 실력으로 증명했다.
이채원의 다음 목표는 내달 열리는 삿포로 아시안게임이다. 그는 “6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깜짝 우승을 일궈냈다”면서 “이번 대회는 2연패를 하겠다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운동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채원은 2018년 평창 올림픽을 현역 마지막 무대로 삼고 있다.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을 시작으로 5번째 올림픽 출전이며, 고향 평창에서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채원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정말 감격스럽고 영광”이라며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성적을 다시 한번 뛰어 넘는 것이 목표다. 또 포디엄(시상대)에 올라 가는 게 꿈이자 염원”이라며 메달 획득에 대한 간절함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외조와 다섯 살 된 딸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는 그는 가족을 향해 “사랑합니다”라며 애정이 듬뿍 담긴 한마디를 남겼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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