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천당과 지옥 오가
열 달 만에 짐 쌀 처지에서
새 부총리 카드 백지화로 유임
訪美 트럼프 정부 측 인사 접촉
대미 무역흑자 해소방안 등 논의
행정부 2인자로 자리매김
“남은 임기 새로운 일 벌이기보다
구조조정 등 기존 과제 집중을”
최근 내각에서 일하는 모습이 가장 두드러진 이 중 한 명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1년 내내 존재감이 없다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형국이다. 경제 설명회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그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재무장관만 4명을 배출한 ‘장관 사관학교’인 골드만삭스를 방문, 한국 경제 상황을 설명했다. 유 부총리는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전략정책포럼 위원장을 맡은 블랙스톤(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의 스티븐 슈워츠만 회장과 대미무역흑자 해소 방안 등도 논의했다. 이는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고 권한대행의 역할도 제한적이어서 그 동안 트럼프 쪽 경제 인사들과 정부 차원의 접촉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유 부총리가 이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적었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국면 전환 차원에서 총리와 부총리를 새로 내정하자, 출마까지 포기하고 내각에 합류한 유 부총리는 취임 열 달 만에 짐을 싸야 할 처지로 몰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부총리 인사청문회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함께 새 부총리 카드는 백지화됐다. 유 부총리는 명실상부한 행정부 2인자가 됐다.
자기만의 ‘노믹스’ 없는 게 장점
13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유 부총리는 1년간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그는 최경환 전 부총리에 비해 수동적 인물로 평가되곤 한다. 최 부총리처럼 ‘부작용이 따를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고 관리 위주의 정책을 펼친 것에 대해서는 점수를 주는 이도 없잖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젠다 하나 없던 무색무취 스타일이 되레 탄핵정국에서 무리하지 않는 관리형 적임자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최 부총리가 빚 내서 집 사라며 경제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다 빚더미에 올라 앉았는데, 유 부총리는 가계부채 문제를 크게 악화시키지 않고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지나치게 소극적 태도로 일관, 경제 체질을 바꿀 시기를 놓치고 구조조정에서도 판단을 그르친 책임을 묻는 시각도 제기된다.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 윤 교수는 “나라 경제가 나아갈 기본 방향에 대한 목표설정과 장기적 설계 없이 단기적 경제활성화 대책만 내놓았다”고 꼬집었다. 구조조정 초기 직접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주도하는 모습이 여러 번 비쳐져,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도 낳았다. 국내 해운업계 1위 한진해운이 지난해 법정관리로 가며 그 동안 한국 해운업이 쌓아 온 자산이 사실상 와해된 데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가 높다. 한진해운 사태는 결국 양대 선사 체제 붕괴와 물류대란으로 이어졌다.
가계부채ㆍ트럼프 정책 대응해야
전문가들은 3~7개월 남은 임기 동안 유 부총리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기존 과제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교수는 “폭탄을 스스로 처리하겠다는 생각보다 터지지 않도록 냉각시켜 관리하고 해체는 새 정부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에서 더 이상 금리가 오르지 않도록 하고 부채 총량이 늘지 않도록 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구조조정과 가계부채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므로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착실히 끌고 가야 한다”며 “가계부채는 소비위축 원인이 되기 전에 총량규제를 통해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금리 인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자본유출을 피할 수 있도록 국가ㆍ기업 신뢰도를 높이고, 트럼프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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