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혹독한 도덕성 검증은 이미 시작됐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23만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이나 아들 반우현씨의 SK텔레콤 취업특혜 의혹, 동생 반기상씨 부자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관계 문제 등이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된 굵직한 줄기들이다. 반 전 총장은 재임시절 유엔 대변인 명의의 성명까지 내며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이제 시작”이라며 본격적인 도덕성 검증을 예고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이 외교부 장관이던 2005년 5월 서울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20만 달러, 2007년 1월 유엔 사무총장 취임을 전후로 미국 뉴욕의 한 한인식당에서 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은 도덕성 검증의 첫 시험대다. 언론 보도 이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모른다”고 시인도 부인도 않으면서 의혹은 진실공방으로 흘렀다. 여기에 반 총장 측이 언론중재 요청이라는 소극적 대응에 그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여권 한 중진 의원은 “대선 국면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BBK 의혹, 박근혜 대통령의 최태민 의혹이 불거졌을 때 형사고발을 통해 검찰에서 사실관계를 밝혀달라고 오히려 치고 나갔다”며 “국민들은 책임지는 자세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장남 우현씨가 SK텔레콤 뉴욕사무소 직원으로 채용될 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아들 반 씨는 2011년 1월 SK텔레콤 뉴욕 사무소 직원으로 취업했다. 특혜 의혹은 SK텔레콤이 미국 현지 법인이 따로 있는데도, 굳이 본사 소속의 뉴욕사무소를 2010년 4월 개설한 뒤 아들 반 씨가 공채가 아닌 특채를 통해 채용되면서 불거졌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대권주자로 유력시되는 반 전 총장에게 SK텔레콤이 일종의 보험을 든 게 아니겠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이나 SK텔레콤 모두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반 전 총장이 사실상 박연차 의혹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치적 파괴력이 적지 않은 문제임에도 반 총장 측이 소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의혹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반 전 총장은 12일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박연차 23만달러 수수’ 의혹에 대해 가장 먼저 해명하기로 했다. 반 전 총장 측 이도운 대변인은 11일 서울 마포 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박연차 관련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여러 번 해명했지만, 오시면 일성으로 분명히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도 동생 반기상씨 부자가 얽힌 친인척 비리 탓에 또다시 검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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