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오리의 학명은 ‘Sibirionetta formosa’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오리속에 속하는 ‘Anas’속으로 분류하다가 1999년 분자생물학 연구에 따라 속명을 바꾸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다른 오리들과는 사뭇 다른 가창오리속이라는 것입니다. 학명으로 ‘Sibirio’가 뜻하는 것은 시베리아를, ‘Netta’는 오리를 뜻합니다. 시베리아의 오리라는 것이죠. 종명인 ‘formosa’는 라틴어로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결국 아름다운 시베리아의 오리라는 의미죠.
가창오리라는 국명의 어원도 다양합니다. 북한에서는 얼굴에 태극무늬가 있어 태극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발견되어서 가창오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리 믿을만한 건 아닙니다. 일본어로 둥글다라는 의미의 가창이 근거라는 설도 있지만, 따져보면 일본명은 토모에가모 즉 태극오리라는 의미일 뿐이죠. 아름답다는 의미인 가창(街娼)을 굳이 가져다 붙여보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 근거는 초라해 보입니다.
매년 겨울이면 이 가창오리가 주목을 받습니다. 아마도 2014년 1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1,000여 마리가 떼죽음 당했다는 ‘오보’의 영향일 것입니다. 물론 일부 개체가 죽기는 했지만 38만여 마리의 집단에서 고작 150여 마리가 10번에 걸쳐 여기저기서 발견되었을 뿐이었죠. 하지만 그 이후부터 겨울철 조류인플루엔자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고, 올해도 끊임없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가창오리를 좀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450~550g에 불과한 소형오리인 가창오리는 우리나라에서 월동한 후 3월부터 2,3개월에 걸쳐 이동해 러시아 바이칼 호수(baikal teal)와 그 하구, 사하공화국의 레나강 삼각주, 크로마강 어귀나 캄차카 등지에서 6월에 번식합니다. 한 번에 약 5,000㎞를 이동하는데 2,3개월을 소요하며 오르내리는 것이죠. 9월경에 출발하여 11,12월에 한국에 도착합니다. 참으로 바쁜 여정이죠.
가창오리의 겨울철 집단 중 한국은 전 세계 95% 이상에 달하는 개체들이 찾아오는 지역입니다. 과거 중국이나 일본에도 널리 분포했던 종이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광범위하게 사용한 살충제와 농약, 무차별적인 사냥이 그 결과를 낳은 것이죠. 1947년 세 명의 일본인이 던지는 그물을 이용해 20일간 5만 마리의 가창오리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기도 합니다. 1980년대 초까지 아마도 2만여 마리 수준까지 줄었다던 가창오리는 한국 서산과 해남의 대규모 간척지에서 회생의 빛을 보게 됩니다. 이후 개체군이 회복하여 그 유명한 BBC ‘살아있는 지구’프로그램에 한국의 가창오리 군무가 나오기도 했죠.
이런 과거를 지닌 가창오리의 삶이 겨울철 이 땅에서도 녹록지 않습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전파자라는 오명 때문에 이리저리 내몰리기 십상입니다. 갈수록 먹이도 부족해지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합니다. 이런 스트레스를 받은 가창오리는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이 녀석들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선 보기에는 겨울 철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오히려 질병을 퍼뜨리는 녀석들을 많이 찾아오게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이 떨어져 여기저기 떠돌 녀석들을 생각해보면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앉아서 굶어 죽기를 기다릴 동물은 없을 테니까요.
하루에 25~30g 정도의 낙곡을 먹는 가창오리 군집은 매일 약 7~10톤 정도의 먹이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곤포사일리지라는 거대한 흰색 마시멜로우가 들판에 놓인 것을 누구나 봤을 겁니다. 볏짚을 사료로 쓰기 위함이죠. 이 과정에서 낙곡도 따라 들어갑니다. 추수 시 낙곡율을 줄이기 위해 콤바인은 갈수록 개량됩니다. 땅에 떨어질 낙곡이 점점 없어져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야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당연지사 아닐까요? 아무래도 한 장소에 머물게 하고, 안정적으로 지내다가 다시 건강하게 북쪽으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 질병의 확산을 차단하는데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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