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어요.’
지난달 24일 자정 록밴드 이브의 신곡 ‘멜로디’가 공개되자 한 음원사이트에 달린 댓글이다. 이브 멤버 박웅(40ㆍ기타)은 술자리에서 이 다섯 글자를 읽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쏟았다. “이브의 노래가 새로 나왔다는 사실에 울고 팬들의 진심 어린 환영에 또 울었다”고 했다.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는 감동, 무려 15년 만이었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이브는 “따뜻한 반응에 놀라고 있다”며 재결성 소감을 전했다. 1998년 가요계에 등장한 이브는 한국형 비주얼 록밴드의 선구자로 불렸다. ‘너 그럴 때면’ ‘아가페’ ‘러버’ ‘소녀’ 등 히트곡을 발표하며 앨범 당 15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록밴드로선 쉽지 않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소속사 부도로 2001년 ‘아윌 비 데어’가 수록된 4집 앨범을 끝으로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멤버들은 인생의 전성기를 허락해 준 이브를 한 번도 잊은 적은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2010년까지 솔로로 이브를 이끌어왔던 김세헌(46ㆍ보컬)에게도 혼자만의 이브는 무의미했다. “혼자 무대에 서면 너무 어색했어요. 지고릴라와 같이 부르던 파트를 혼자 부를 때 특히 멤버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죠.”
솔로와 밴드생활을 하다 아이유, 가인 등의 작곡가로 활동해 온 지고릴라(44ㆍ본명 고현기ㆍ프로듀서 겸 키보드), 다른 가수들의 공연 세션과 뮤지컬 배우로 지내온 박웅,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해온 김건(40ㆍ베이스)에게도 이브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재결성을 대비해 수년 간 이브의 곡들을 따로 만들어 놨었다는 지고릴라는 “다시 뭉칠 거란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서로의 재결성 의지를 확인하고 2015년 본격적인 녹음에 들어갔지만 작업은 쉽지 않았다. 지고릴라는 “난 작곡가로 회사원 같은 생활을 했고 세헌이 형은 펍(Pub)을 운영하면서 각자 생활환경이 다 달랐다”며 “하다못해 일어나고 자는 시간까지 달라 녹음 스케줄 하나 잡는 것도 힘들었다”고 당시의 고충을 털어놨다.
2년 여의 작업을 마쳤지만 막상 컴백 시기가 다가오자 고민이 생겼다. 이브와 같은 시기 활동했던 아이돌 그룹의 최근 재결성 흐름에 편승한다는 시선 때문이었다. 김세헌은 “다시 연예인 활동을 해서 인기를 끌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이브 음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이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멜로디’ 피처링에 참여한 김희철 역시 멤버들에겐 고마운 자극제였다. 과거 이브의 열성 팬으로 알려진 김희철에 대해 김세헌은 “우리가 정말 늙은 것 같기도 하고 선배가 됐다는 책임감도 느꼈다”고 했다. 지고릴라는 “희철이가 피처링해 주겠다는 메신저 내용을 저장해놓고 힘들 때마다 꺼내본다”며 웃었다.
지난달 MBC ‘일밤-복면가왕’에서 박진영의 ‘허니’를 록 버전으로 선보였던 김세헌은 팬들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단다. 그는 “이브는 무게로 똘똘 뭉친 그룹인데 개인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며 “이브의 무서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나갔다”며 웃었다. 지고릴라가 “한창 활동할 때 ‘체험 삶의 현장’과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같은 예능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거들자 박웅은 “이미지가 강해 보일 뿐 속은 정말 여린 사람들이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비주얼 밴드란 명성에 걸맞은 노력도 빼놓지 않는다. 훗날 딸(2)의 지갑 속 사진에 멋진 모습으로 담기기 위해 다이어트에 한창이란 지고릴라의 말에 김세헌은 “멤버들에게 배 나온 아저씨 느낌은 안 된다고 당부했다”며 웃었다.
11일 공개한 미니앨범 더블 타이틀곡 ‘선샤인’에 대해선 “역시 이브다운 곡”, ‘양초인형’에 대해선 “새로운 방향 제시”란 소개를 내놨다. 이들은 봄 각종 공연을 통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아이돌도 아닌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이브를 기다렸던 분들이 행복하다고 해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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