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미국 정부가 현재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이 오슬로협정의 폐기까지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측 고위 평화협상 대표 모하메드 슈타이야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오슬로협정에서 합의한 이스라엘 인정문제를 전면 재검토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오는 13일과 15일에 각 이슬람 사원과 교회에서 대사관 이전 반대 시위에 동참해줄 것을 아랍국가들에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측의 이러한 강경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취임 연설에서 이스라엘 주재 미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공식화할 것이라는 외교가의 소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달 친 이스라엘 강경파 인사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을 주 이스라엘 대사로 임명하면서, 대선기간 약속한 대사관 이전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공화당 상원의원 3명이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 이전을 촉구하는 법안을 제출했고, CNN 방송은 9일 “인수위가 이를 우방국들에게 이미 통고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聖地)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주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텔아비브의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면 기존의 중립적 입장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슈타이야 대표는 오슬로협정이 1995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참관 하에 체결됐음을 상기시키며 “(대사관 이전은) 미국이 협정 보증국으로서의 의무와 국제적 약속을 저버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최근 들어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은 트럼프에게 서한을 보내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중동 전체의 안정과 안보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슈타이야 대표도 “대사관 이전 계획이 실현되면 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은 끝장난다”면서 “트럼프가 자신의 것도 아닌 예루살렘을 함부로 넘겨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유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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