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 법무장관 인준청문회
“클린턴 재수사 없다” 선 긋고
대선 러시아 개입도 인정
인종차별 의혹 해명 나섰지만
“입각 반대” 시위대 청문회장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20일)을 앞두고 미국 의회가 본격적인 인사검증 작업에 돌입한 가운데, 차기 정부 법무장관으로 지명된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앨라배마)이 트럼프와의 거리 두기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최측근이자 ‘원조 트럼프맨’으로 꼽히는 세션스 내정자가 물고문,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등 트럼프가 취임 후 부활을 예고한 사안에 대해 “하지 않겠다”며 잇따라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세션스 내정자는 10일(현지시간) 미 연방의회 상원 법사위가 진행한 인준청문회에서 “대통령이 도를 넘으면 과감히 ‘노(No)’라고 말할 것”이라며 “정권의 외압을 버텨내는 장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물고문 도입’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그는 “명백한 불법이다. 법망을 피해서 물고문을 부활시킬 묘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무슬림 입국 금지’ 공약에 대해서도 세션스는 “특정 종교가 아닌, 개인 테러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수니파 급진단체 이슬람국가(IS) 등 테러리스트에 맞서기 위해 물고문을 승인하겠다고 말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면 특별검사를 임명해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 사건을 재수사하고,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언한 데 대해서도 세션스는 “정치 논쟁일 뿐”이라며 “그런 지시에는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세션스 내정자는 “정치 논쟁이 사법 소송으로 번진 적은 없다”면서 “미국은 정적을 처벌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해킹을 통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정보당국의 결론도 인정했다. 세션스는 러시아 해킹 의혹에 대해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외국 세력에 의해 뚫린 것”이라며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대응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동성 결혼과 낙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신념을 드러내면서도 “대법원 판결을 따르겠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세션스는 특히 과거 그의 발목을 잡았던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적극 해명했다. 그는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라며 “백인 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과 그들의 증오 이데올로기를 혐오한다”고 말했다. 앞서 세션스는 흑인인권단체를 가리켜 “공산당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KKK에 대해서는 “마리화나를 피우지 않는 한 나쁘지 않다”고 언급해 논란에 휘말렸다. 이 때문에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연방 지방법원 판사직 지명을 받고도 상원에서 인준을 거부당했다. 지난 3일에는 미국 170개 로스쿨 교수 1,100명이 그의 인준 거부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인준 청문회 첫 주자로 나선 세션스가 트럼프 당선인의 거친 공약들과 거리 두기에 나서면서 향후 청문회를 치를 장관 지명자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친러 성향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자는 11일 예정인 청문회에서 “러시아는 우리의 위협이다. 대러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 발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지명자들이 물타기 발언으로 청문회만 통과한 뒤, 원래 극보수 성향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통령 취임일인 20일 전까지 인준청문회를 완료해야 새 정부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에 지명자들이 본인의 의견과 다소 다르더라도 일단 청문회 통과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청문회장에는 세션스의 입각에 반대하는 반트럼프 흑인 시위대가 “인종차별을 끝내자. 세션스를 막아내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시위를 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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