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악용 못하게 지주社 손질
법인세 인상은 마지막에 검토”
두 마리 토끼 잡기 나서
정책 선점으로 반기문과 차별화
당내 잠룡들 섀도 캐비닛 등용
경선 후유증 최소화 작업도 착수
야권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섰다. 매주 국가 정책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면서 강력한 경쟁 상대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차별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예비내각(섀도 캐비닛) 카드로 당내 경선 이후 분열을 막기 위한 물밑 작업에도 착수했다.
문 전 대표는 10일 역대 정권의 과제였던 재벌개혁 정책의 밑그림을 공개했다. 그는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3차 ‘정책공간 국민성장’ 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역대 정부는 재벌개혁을 성공하지 못했다. 저는 꼭 실현 가능한 약속만 하고자 한다”면서 “4대 재벌(삼성ㆍ현대차ㆍSKㆍLG)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30대 재벌의 자산 중 삼성가(家) 자산이 전체의 4분의 1에 달하고, 4대 재벌은 3분의 2를 차지하는 만큼 핵심 환부를 집중적으로 수술하겠다는 취지다.
문 전 대표는 4대 재벌 개혁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혁을 통한 투명한 경영구조 확립 ▦재벌의 확장을 막고 경제력 집중 축소 ▦공정한 시장경제 구축 등을 제시했다. 또 다중대표소송제와 다중장부열람, 노동자추천이사제 등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경제민주화 방안을 포함한 당 전반의 의견을 수렴한 모양새를 취했다.
문 전 대표는 이어 “재벌의 중대한 경제범죄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겠다”며 “중대한 반시장 범죄자는 시장에서 퇴출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강조했다. 재벌 지배구조에 대해선 “지주회사제도가 재벌 3세의 기업 승계에 악용되지 않도록 자회사 지분 의무소유 비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 과정에서 제기된 재벌의 준조세 논란에 대해서도 “기업들이 2015년 납부한 준조세가 16조4,000억원이었다”며 “준조세 금지법을 만들어 기업을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법인세 인상안은 이번 발표에서 제외됐다.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에 대한 조세감면 폐지를 우선 제시했고, 소득세 조정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한 뒤 법인세 인상을 마지막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내달까지 싱크탱크인 국민성장을 중심으로 매주 지방분권ㆍ격차해소ㆍ미래산업 등에 대한 정책 발표도 준비 중이다. 이러한 정책 행보는 반 전 총장이 12일 귀국하더라도 귀국보고회 참석과 캠프 구성 등으로 정책 제시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 정책 선점으로 ‘준비된 주자’임을 각인시키겠다는 포석이다. 지난 18대 대선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에 치중하느라 준비했던 정책ㆍ공약들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문 전 대표가 최근 인터뷰에서 당내 경쟁 주자들을 섀도 캐비닛으로 등용해 국정을 공동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당내 경선이 치열해 질 경우, 본선에서 경쟁 주자들의 도움을 받거나 그들의 지지층까지 끌어안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후보자 중심이 아니라 당을 중심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캠프 정치’ 관행을 뛰어넘겠다는 뜻이다.
또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차기 정부에선 인수위원회가 꾸려지지 않기 때문에 당의 주요 자산인 경쟁 주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란 측면도 감안한 구상이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민주당에 문호를 한정하지 않고 정권교체에 협력하는 세력들과의 ‘소연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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