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보다 중요한 건 훈련이죠.”
삼성화재 박철우(32)가 지난 8일 대한항공과 경기를 마친 뒤 한 말이다. 잠시 인터뷰이를 착각했나 싶었다. 삼성화재를 국내 최강의 팀으로 만들고 은퇴한 ‘배구명장’ 신치용(62) 전 감독의 ‘훈련도 실전이다’는 평소 지론이 고스란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신 전 감독은 지금은 구단 단장이고 박철우는 그의 사위기도 하다.
삼성화재가 ‘봄 배구’의 판도를 흔들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삼성화재는 지난 5일 OK저축은행과 8일 대한항공을 모두 3-0으로 완파 했다. 4위권 밖으로 처져 있던 삼성화재의 분전으로 포스트시즌을 향한 경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삼성화재에 더 고무적인 건 결과 외에 내용이 더 짜임새 있었다는 점이다.
타이스(26)와 박철우 ‘쌍포’의 위력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평이다.
타이스는 22경기 710점으로, 2위 파다르(21ㆍ우리카드ㆍ21경기 533점)를 멀찌감치 따돌린 전체 득점 1위다. 공격성공률도 55.40%로 김학민(34ㆍ대한항공ㆍ56.51%)에 이은 2위다. 정확성과 파괴력을 겸비했다는 의미다. 작년 11월 전역해 팀에 합류한 박철우도 빠르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컨디션에 따라 기복은 있지만 고비 때는 확실히 해결해주는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삼성화재의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과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삼성화재는 예전 프로배구 최강으로 군림하던 시절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극한의 고비에서 상대는 범실을 해도 삼성화재는 반드시 점수를 냈다. 또한 팀이 위기에 몰리면 더 적극적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동료들을 독려하는 ‘분위기메이커’가 꼭 등장했다. 현재 코치로 있는 고희진(37)이 대표적이다. 이런 ‘DNA’가 다시 보인다. 박철우는 “요즘 동료들의 열의를 보면 옆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고 말했다. 이어 “웃으며 배구하는 것만이 즐거운 배구가 아니다. 미친 듯이 죽어라 몰입했을 때 얻는 즐거움도 크다. 작아 보여도 큰 차이다”고 설명했다.
물론 삼성화재가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임도헌(45) 삼성화재 감독은 ‘대한항공전에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겠냐’는 질문에 “70~80점이다”고 답했다. 상대를 압도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야박한 점수였다. 임 감독이 지적한 대목은 2ㆍ3세트 때 멀찌감치 달아날 수 있는 기회에서 추격을 허용한 부분이었다. 이날은 다행스럽게 고비를 넘겼지만 다른 날도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게 임 감독 생각이다.
9일 현재 1위 현대캐피탈(승점 41)과 2위 대한항공(승점 40), 3위 한국전력(승점 37)의 간격은 촘촘하다. 4위 삼성화재(승점 35)와 5위 우리카드(승점 34) 모두 3위권을 추격권 안에 뒀다. V리그 남자부는 3ㆍ4위팀 간 승점 차가 3점 이하일 경우엔 단판 준플레이오프(준PO)가 열린다. 2013~14시즌부터 이 규정을 신설했지만 두 시즌 동안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시즌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이 첫 준PO를 치렀고 삼성화재가 3-1로 승리해 OK저축은행과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바 있다. 올해도 삼성화재는 포스트시즌행 열차에 탑승할 수 있을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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