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상 위장 1069개 날라
“금반지 탓” 검색 눈속임
경기남부청, 평택항 잠복 덜미
국내 유통망ㆍ총책 수사 집중
지난 4일 오전 10시쯤 경기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전날 밤 중국 옌타이(煙台)항에서 출항한 여객선이 입항하자 말린 고추 등을 간이수레에 실은 정모(45)씨 등 남성 4명과 여성 1명이 내려 보안 검색대에 앞에 섰다. 겉모습은 중국을 오가며 농산물을 수입하는 여느 ‘보따리상’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정씨 등이 다른 상인들의 틈에 끼어 검색대를 통과하려던 찰라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국제범죄수사1대 형사들이 팔짱을 끼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경찰이 이들을 터미널 내 정밀검사실로 압송, 금속탐지기 등으로 몸을 수색하자 항문 등에서 순금덩어리 10개가 쏟아졌다. 1개당 시가 1,000만원 상당의 200g(가로 2㎝ㆍ세로 3㎝ㆍ높이2㎝)짜리였다.
경찰이 이날 정씨 등 5명에게서 압수한 순금덩어리는 모두 35개(7㎏), 3억6,000만 원어치나 됐다. 윤형철 경기남부청 국제범죄수사1대장은 “지난해부터 첩보를 입수해 잠복하는 등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중국 ‘보따리상’으로 위장, 몸 속에 금괴를 숨겨 밀수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남부청 국제범죄수사1대는 10일 특가법상 관세법 위반 혐의로 정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최모(71)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에게 밀수를 지시한 혐의로 박모(61)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정씨 등은 지난해 9월부터 이달 4일까지 박씨의 지시를 받고, 200g짜리 금덩어리 1,069개(213㎏ㆍ110억 원 상당)를 밀수한 혐의다. 이들은 중국에서 박씨가 건넨 금덩어리를 1인당 5∼10개씩 항문 등에 넣은 뒤 평택항을 통해 몰래 들여온 것으로 조사됐다.
평택항에서 세관을 통과할 때 검색대에서 경보음이 울리면 “금반지 때문”이라고 둘러대 단속을 피해왔다. 국내로 들여온 금덩어리는 정씨가 임대한 주택이나 여관 등의 화장실에서 빼내 상선인 박씨에게 전달하고, 개당 3만5,000원씩을 받았다.
국내 도피 중인 박씨는 운반책으로 매형인 최씨와 누나(65)까지 동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덩어리에 일련번호를 새기고 순서대로 몸 속에 은닉하도록 해 ‘배달사고’를 차단하려 하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은 정씨 등을 검거하기 전날 항공편으로 미리 입국한 것으로 파악된 박씨를 쫓는 한편 밀수된 금덩어리의 유통경로 등을 추적 중이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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