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시간이라며 승차 거절했지만
그대로 타자 중앙선 넘나 들어
기사 과거에도 위협운전 경력
보복-난폭운전 하루 9.9명꼴 검거
“재범률 높아 경찰 대면교육 필요”
직장인 김모(29ㆍ여)씨는 지난달 3일 새벽 여성 동료 2명과 택시를 탔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산사거리 부근에서 빈 택시에 탄 김씨는 목적지를 묻는 기사 이모(63)씨에게 800m가량 떨어진 서울지하철 3호선 신사역까지 가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목적지를 들은 이씨는 "거기는 안간다"며 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다. "교대 시간이 가까워 강북구 수유리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핑계도 댔다. 황당하긴 했지만 김씨는 가까운 거리이니 가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운전대를 잡은 이씨는 돌변했다. 급가속을 하더니 중앙선을 넘나 들며 마주 오는 차량을 향해 돌진하기까지 했다. 놀란 김씨와 동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려달라”고 사정 했지만, 이씨는 “얘기를 알아들어야지”라며 난폭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겁에 질린 김씨와 동료들은 제대로 항의조차 못한 채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김씨는 급제동 과정에서 무릎까지 다쳤지만 ‘공포의 5분’ 동안 고통조차 느낄 수 없었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서울 종암경찰서는 지난달 12일 이씨를 검거, 난폭운전(형법상 상해죄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조사 결과 이씨는 2011년에도 승객에게 위협 운전을 한 혐의로 적발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 위 시민들의 안전이 난폭 운전자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경찰이 지난해부터 보복ㆍ난폭운전을 ‘차폭(車暴)’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이씨와 같은 ‘로드 레이지(road rageㆍ도로 위 분노 운전)’를 일삼는 운전자들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날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2~12월 보복ㆍ난폭운전 집중 단속 결과, 운전자 3,165명이 입건됐고 이 중 13명이 구속됐다. 하루 평균 9.9명꼴로 도로 위에서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분노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경찰의 분석에 따르면 보복ㆍ난폭운전은 주로 조급증과 순간적인 충동 등 현대인의 심리 상태에서 기인한다. 난폭운전의 경우 급한 용무(39.1%)와 평소 습관(22.1%)이 전체 61.2%를 차지했고, 보복운전도 상대운전자의 끼어들기(43.7%)나 경적ㆍ상향등(20.2%) 때문이라는 비율이 높았다. 운전자들은 사소한 짜증을 참지 못하고 도로 위에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셈이다. 오주석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보복ㆍ난폭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차량이 끼어들거나 자신이 늦게 가는 것을 손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했다.
보복ㆍ난폭 운전자들 중 재범이 많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지하철 8호선 가락시장역 인근에서는 택시기사 김모(50)씨가 여성 운전자가 모는 시내버스가 자신의 차량 앞에서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급정거 한 뒤 욕설을 하다 경찰에 검거됐다. 조사 결과 김씨는 이전에도 신호위반 3회, 끼어들기 금지위반 1회, 안전운전의무위반 1회 등 총 8회 과태료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선의 한 교통경찰은 “교통 위반 사범들을 보면 재범 비율이 다른 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운전 습관이 보복ㆍ난폭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상습적인 난폭운전자들에게는 대면 교육 등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한 운전자가 보복ㆍ난폭운전을 했다는 신고가 2건 이상 들어오면 경찰이 직접 찾아가서 운전 습관에 대해 경고를 한다”며 “대면 접촉을 통해 상습 난폭운전자들의 위험한 운전행태를 개선하는 대책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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