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는 84%가 사교육 노출
과목 유형은 국어ㆍ체육ㆍ수학順
초등생도 하루 30분 이하가 적절
“체험활동이 아이 발달에 더 도움”
최모(33)씨는 최근 네 살배기 아들 때문에 고민이 깊어졌다. 어린이집에서 한창 한글을 배우는데 도통 모르겠다고 투정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는 “교사와 상담했더니 또래 여자 애들은 이미 한글을 다 배웠고,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한글학습지를 하고 있더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영어와 미술학원에 다니는데, 한글도 따로 사교육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요.”
남들 애보다 앞서가겠다는 욕심, 최소한 뒤쳐지면 안 된다는 불안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추세는 취학 전 영유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분별한 사교육보다 실컷 놀아주는 게 해당 또래의 발달에 낫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점점 먹히지 않는 양상이다.
9일 육아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영유아의 사교육 노출, 이대로 괜찮은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10월 전국 2세(영아) 아동 부모 547명과 5세(유아) 아동 부모 704명을 설문했더니 5세는 10명 중 8명 남짓(83.6%)이, 2세는 10명 중 3명 이상(35.5%)이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과목 유형별로 따지면 5세는 국어 체육 수학, 2세는 국어 체육 미술 등의 순이었다. 특히 이제 막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한 2세는 3명 중 1명 가까이(28.6%)가 한글 논술 등 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회당 사교육시간은 거의 학생 수준이었다. 2세는 회당 47.6분, 5세는 회당 50.1분씩 교육을 받았다. 주당 횟수로는 2세가 2.6회, 5세가 5.2회였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영유아기 주의집중 시간을 고려할 때, 현재 50분 안팎의 회당 사교육시간이 과하다고 지적했다. “국외학자들이 제시하는 권장 숙제시간에서 영유아는 아예 빠져있고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의 경우 하루에 30분 이하 또는 일주일에 15~20분 정도의 3개 이하 숙제를 하는 게 적절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국내 영유아는 상대적으로 학습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런데도 부모 마음은 달랐다. 설문에 참여한 2세 아동 부모의 대다수는 현재 사교육 수준이 적당하다(69.4%)거나 부족하다(26.9%)고 답했다. 5세 아동 부모는 부족하다(40.1%)는 응답이 적당하다(54.3%)는 응답비율과 엇비슷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취학 전인 영유아 시기는 공부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 세상을 배워가는 때”라며 “준비되지 않은 아이에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다 보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서영 한경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도 “때가 되면 저절로 익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해서 사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며 “한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놀아주고, 가족과 함께 박물관에 가는 등 체험 활동을 많이 하는 게 아이 발달에는 더 좋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영아기에 사교육 경험이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영아보다 정서 불안 행동을 많이 보이고, 유아가 경험하는 사교육의 수가 늘수록 비행, 공격성 등 밖으로 표출되는 문제행동과 위축, 우울, 불안 등 내면적 문제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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