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9
과테말라 내전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마야 소수부족 인권을 위해 헌신한 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u Tum, 1959~)이 1992년 12월 9일 노벨 평화상을 탔다. 그 상은 미국과 친미 군사독재정권에 희생된 이들과 여전히 폭력과 살해의 공포에 신음하던 모든 과테말라인에게 바친 인류의 양심이었다.
내전은 1954년 미 중앙정보국(CIA)과 해병대가 우파 반군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앞서긴 독재와 다국적 농업기업 및 지주의 수탈, 정치적 부패 끝에 85% 지지율로 아레발로 베르메호 민주정부가 들어선 것은 1944년이었다. 아레발로 정부와 50년 집권한 하코보 좌파정부는 노조 파업권과 언론ㆍ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광범위한 토지개혁, 즉 대토지 소유주들의 농지를 유상 몰수해 땅 없는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펼쳤다. 그것이 바나나플랜테이션으로 안정적 수익을 얻던 유나이티드 프룻(UFC) 등 다국적 기업들의 분노를 샀다. 그들 뒤에 미국이 있었고, 미국은 과테말라 민주주의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다. 그 끝이 쿠데타였다. 좌파 개혁주의 세력의 저항과 광범위한 게릴라전이 시작됐다. 54년 집권한 친미주의자 아르마스는 토지를 기업들에게 환원했고, 좌파 정당을 해산했고, 노골적인 테러정치를 펼쳤다.
멘추는 과테말라 서북부 엘 키체 출신 마야 원주민이다. 반군 거점을 없애기 위한 정부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그는 가족을 잃고 80년대 초 니카라과로 망명, 81년 멕시코로 이주한 뒤 조국 현실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83년의 구술사 ‘내 이름은 리고베르타 멘추, 내 의식은 이렇게 탄생했다’는, 훗날 일부 내용이 과장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키체족이 겪은 수 세기 억압과 배제의 역사, 현재의 과테말라 현실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였다. 84년 아프리카통일기구(OAU)의 난민인권선언인 ‘카르테헤나 선언’이 만들어졌다.
내전은 96년 집권한 중도 우파 아르주 이리고옌 정부에 의해 36년 만에 끝이 났다. 그 사이 마야 원주민 등 15만 명이 희생됐고 5만 명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이후 유엔 역사규명위원회 보고서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들’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었다. 멘추의 노벨상 수상으로 저 역사의 전환을 촉구하는 함성이 커졌다. 멘추는 상금으로 인권재단을 설립했고, 유엔은 이듬해인 93년을 ‘세계 원주민의 해’로 지정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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