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기금 홍보대사 열정
“AIㆍ잦은 태풍도 대표적 사례”
‘똑똑한 미국인’,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외국인’, ‘똘똘이 스머프’.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소신 있는 발언으로 주목 받고 있는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시(29)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지난 해 9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서 외교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양한 방송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생활 6년 차인 그에게 또 하나의 관심분야가 생겼다. 바로 환경과 동물보호다. 그는 지난 해 4월부터 세계자연기금(WWF)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라시는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기후변화가 먼 얘기 같지만 결국 생태계 파괴에 따른 여파는 인간에게 돌아온다”며 “우리가 한국산 홍어를 먹지 못하게 된 것을 비롯해 두루미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것, 강력한 태풍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 전염병 질병 증가로 이어지며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많은 닭들이 살처분 되었죠. 당장 닭과 달걀 값이 오르는 등 기후변화는 먼 얘기가 아니라 우리 생계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잦은 태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후변화의 여파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상승하면서 바다의 따뜻한 물이 늘어나고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태풍이 강력해지고, 영향권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라시는 생태계 보전의 필요성, 기후변화 여파 등에 대해 마크 라이너스의 ‘6도의 멸종’, 조세프 롬의 ‘기후변화’ 등의 책을 통해 공부했다. 이에 더해 WWF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WWF가 다른 나라 정부나 주민들과 협업을 통해 생태계 보전을 위한 창의적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지난 해 가을 중국 산시성 포핑현 판다 자연보호구역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은 잊을 수 없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판다의 서식지인 대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거나 팔아서 생계를 이어 갔다. 정부가 벌목을 금지시켰지만 주민들은 단속을 피해 불법 벌목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판다 보존과 생계를 위한 대나무 벌목이라는 기로에 선 주민들을 위해 WWF는 소득비중이 낮았던 양봉 사업 확대로 눈을 돌렸다. WWF는 주민들에게 벌통과 양봉 기술을 지원하면서 양봉 수확량이 늘었고 이를 ‘판다 꿀’이라는 지역 특산품으로 만들어 판매를 하게 됐다. 이는 판다 서식지 보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판다 서식지에 관광객들을 위한 도로를 만들 때에도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고 생태통로를 만드는 법 등을 찾았다”며 “WWF가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 철원의 두루미에게도 지역주민과 함께 환경 보전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라시는 생태계 보전을 위해 국가나 비정부단체뿐 아니라 기업, 소비자의 역할도 크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국제 정치보다 세계 네트워크 정치라고 얘기해야 한다”며 “국가가 모든 분야에서 중심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민간의 역할이 커졌고, 환경 문제 역시 기업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면 투표를 통해 여론의 힘을 보여주듯이 소비에 있어서는 구매를 통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며 “완벽한 선택을 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학교, 방송, 정부기관 등 한국에서의 경험이 다양하지만 그는 아직 꿈 많은 청년이기도 하다. 환경, 동물호보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원래 늘 목표를 세우는 편인데 지금은 큰 계획이나 목표는 없어요.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정진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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