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기관장 9명 사표 받아내
시정 새 동력 불어넣기 평가 뒤엔
“여전히 원칙도 감동도 없다” 비판
이미지 변신 통한 재선 대비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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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현 광주시장이 광주시 산하 공기업과 출연기관장들을 향해 “사표를 써내라”면서 ‘인적 쇄신’ 카드를 뽑아 들었다. 취임 이후 보은ㆍ낙하산 인사가 끊이지 않으면서 “이성을 잃었다”는 극단적인 비난까지 들어야 했던 윤 시장이 뒤늦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윤 시장이 그간의 인사 실패 책임에 대한 사과와 반성도 없이 산하 기관장들의 ‘자기희생’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 시장은 최근 도시공사, 도시철도공사, 광주여성재단, 광주문화재단, 광주신용보증재단 등 8개 공공기관장과 시체육회 상임부회장의 사표를 받아냈다. 이들은 윤 시장의 30년 친구, 선거캠프 인사, 대학 동문 등으로 보은ㆍ측근 인사 논란을 불렀던 당사자들이다. 윤 시장은 지난해 말 산하 공공기관장 26명 중 올해 임기가 끝나는 이들 9명을 인적 쇄신 대상으로 선정하고 정무라인을 통해 이들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
윤 시장의 한 측근은 윤 시장의 이런 주문이 “시정을 새롭게 하기 위해선 공직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공공기관)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청 안팎의 반응은 엇갈렸다. 윤 시장 측은 “인적 쇄신을 통해 시정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밝힌 반면 정치권 일각 등에선 “정치적인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 시장이 이들 기관장들의 ‘자기희생’을 요구한 것은 ‘더 많은’ 인적 쇄신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시장은 인적 쇄신의 폭을 산하 공공기관의 임원들까지 넓힐 계획을 갖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시 관계자는 “시정이 달라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면 보은ㆍ측근 인사 논란이 됐던 기관장들의 희생이 필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시장의 자기희생 요구가 과연 제대로 된 인적 쇄신 전략인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적 쇄신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결단으로 이뤄질 때 정치적 효과가 가장 큰데, 윤 시장이 등을 떠미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그 효과를 반감시켜 놨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기관장들은 사표를 내지 않았는데도 정무라인에서 사표를 낸 것으로 언론에 흘린 뒤 사표 제출을 종용한 데 대해 “이런 식으론 못 나가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공공기관장 인적 쇄신은 윤 시장이 자신에게 쏟아졌던 “망사(亡事) 인사(人事)”라는 비판을 걷어내면서 이미지 변신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지만, 이를 통해 취임 이후 줄곧 밑바닥을 기고 있는 자신에 대한 시정 지지도도 끌어올려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재선을 대비하겠다는 이중 포석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한 광주시의원은 “사실 산하 공공기관 때문에 시정 분위기가 나빠진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더구나 시정을 마무리해야 할 임기 후반기에 시정의 연속성 측면에서 본다면 산하 기관장 물갈이는 좋은 것은 아닌데도 윤 시장이 이를 밀어붙이는 데는 인적 쇄신이라는 명분도 쌓고 재선 준비라는 실리도 챙기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쪽에선 “원칙도 감동도 없다”며 의미를 깎아 내렸다. 일부 시민단체는 윤 시장의 인척이자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전 광주시정책자문관의 인사 및 시정 농단 의혹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윤 시장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적어도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시장이라면 산하 기관장 인적 쇄신에 앞서 자신의 인사철학 부재와 인사 실패 책임에 대한 진솔한 대시민 사과를 했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윤 시장은 이를 외면한 채 산하 기관장들의 사표만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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