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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복지국가, 다른 자본주의를 향한 가능성

입력
2017.01.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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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부정적인 것들과 함께, 이번에는 간신히 희망도 빠져 나와 우리 앞에 놓여있다. 한국사회의 복지국가 전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비관은 한국이 저성장, 저고용 체제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박근혜 정권의 복지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나온다면, 다시 희망을 불러낸 것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다.

지난 십 여 년 동안 우리 사회의 변화 궤적을 보면 나는 복지국가 연구자로서 할 말이 별로 없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1998년 이후 지금까지 복지지출은 계속 늘었지만, 한국인들의 삶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다. 빈곤율과 자살률은 늘었고 떨어진 출산율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출산에 앞서 결혼과 취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편 경제는 성장하여 파이 크기는 꾸준히 커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보통 사람들의 삶은 더욱 팍팍하다. 파이를 키운 후 나누자는 수십 년 동안 반복된 거짓말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물론 복지를 위한 약간의 변명거리는 있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GDP의 약 10%로 OECD국가 평균의 약 절반으로 아직 양적 투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복지와 성장이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도록 만드는 데 무력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경제의 뇌관이 된 가계부채 문제 일부도 시장소득이 불충분하고 복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노동과 복지의 공백을 개인들이 빚으로 메운 결과로 보인다.

그 동안 우리 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리며 의도한 것은 고용안정과 노동권이 무너지면서 생긴 문제를 좀 줄여보려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독의 바닥을 깨면서 동시에 물을 부어 채우려는 것이다.

이제 광장에서 박근혜 정부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복지에 대한 요구는 줄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 정부에서와 달리 복지재정을 위한 증세 논의가 나온 것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더 크게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복지를 질 낮은 고용과 불평등의 보완물로 삼아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지난 십여 년 동안 이미 확인하였다.

이제 논의를 바꾸어 다른 자본주의를 향한 것으로 복지국가를 말해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신자유주의가 금융자본 위주의 투자와 성장을 추구하고, 노동을 억압하고 분배를 억제했다면, 그래서 복지는 그 부작용을 다루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 복지는 사람에 대한 투자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한 축으로, 그리고 획기적 재분배 체계로 다시 개념화될 필요가 있다. 복지는 나쁜 고용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의 질을 끌어올리는 도구이자 자본에 대한 개인의 협상력과 자율성을 키우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공공의 돌봄, 의료, 교육, 그리고 대규모 재분배는 사람을 통한, 그리고 사람 중심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핵심이 될 수 있다. 즉, 복지는 한국 자본주의 재설계의 핵심이자 변화를 견인하는 것으로 취급될 때 ‘희망’이 될 수 있다. 복지지출 증가는 그 결과일 뿐이다.

불황과 국제정세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짙다. 복지국가, 다른 자본주의를 향한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나라 역사를 보아도 복지국가를 향한 길은 험로였다. 그들 역시 대공황, 저출산, 전쟁 등 가장 큰 어려움 속에서 복지국가로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변화에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 십 보를 후퇴해야 했던 우리 역사를 볼 때, 제자리에 주저앉아 얻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복지가 정권 획득의 핵심 도구였던 박근혜 정권을 거치고도 다시 복지국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광장 민주주의를 일군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변화를 일궈나갈 때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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