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보인 한국외교… 이번엔 日이 치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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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보인 한국외교… 이번엔 日이 치받다

입력
2017.01.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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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부산 소녀상 항의 조치로

주한 대사ㆍ부산 총영사 동시 소환

美도 끌어들여 영향력 행사 압박

中 사드 으름장 이어 릴레이 모멸

리더십 공백 탓 정면 대응 못 해

정부는 항의ㆍ경고 뒷짐만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에 항의하는 조치로 소환명령을 내리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본국 귀국을 앞둔 나가미네 대사를 초치 했다. 연합뉴스.

한국 외교가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 치여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을 뒤집기 위해 우리 정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민간부문의 보복조치를 강화하면서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이 가세해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빌미로 주한 대사와 총영사를 동시에 소환하는 초강수를 던지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외교의 리더십이 실종된 틈을 타 이처럼 일중 양국이 우리를 뒤흔들고 있지만, 정부는 현상유지에 골몰한 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일본은 6일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대해 총공세를 펼치며 우리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먼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에게 일시 귀국 명령을 내렸다. 일본이 한국 주재 대사와 총영사를 동시에 소환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한 대사관 폐쇄나 단교를 제외하면 최고 수위의 외교적 항의조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 시민단체가 부산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한 것은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국 정부에 소녀상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현 시점에서 사태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최근 일본 언론은 “위안부 합의로 10억엔을 받고서도 소녀상을 놔두는 건 ‘보이스 피싱’(입금사기) 같다”며 혐한 여론을 부추겨왔다.

일본은 특히 미국을 끌어들여 전선을 확대하면서 한국을 옥죄고 있다. 소녀상 설치가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조 바이든 미 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한일 정부간 합의를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며 부산 소녀상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사무차관도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일 외교차관회담에서 “소녀상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하며 철거를 요구했다. 한미일 3국 차관회담을 앞두고 열린 한일 양자회담에서 소녀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은, 미국을 상대로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노골적인 압박이나 다름없다. 한 외교 전문가는 “과거사 문제를 한미일 3각 안보체제를 흔드는 안보 현안으로 둔갑시켜 ‘형님’ 미국에게 고자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일 양국간 진행 중인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하고, 고위급 경제협의도 연기하기로 했다. 소녀상 이슈를 경제현안으로 쟁점화해 파장을 최대한 확산시키려는 심산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먼저 신뢰관계를 만든 뒤에 논의를 재개하지 않는다면 통화스와프 협정은 안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면서 협상 결렬의 책임을 우리 측에 떠넘겼다. 통화스와프는 비상 시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상대국에서 달러를 차입할 수 있는 일종의 외환보유 ‘안전판’으로, 지난해 8월 양국 재무장관회의에서 우리 측 제안으로 협상이 시작됐다. 일본의 이런 태도는 한국이 경제 위기에 처해도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어서, 실제 가능성을 떠나 한국인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일본은 또 부산 총영사관 직원의 부산시 관련 행사 참석도 보류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까지 전면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6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서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로 된 한복을 입은 40대 여성들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중 양국의 굴욕적인 조치에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적지근하다. 이날도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항의나 경고는커녕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 정부의 결정에 매우 유감”이라는 짤막한 입장을 내는데 그쳤다. 소극적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자 뒤늦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일본도 지자체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중앙정부가 손 놓고 있지 않느냐”며 “마찬가지로 소녀상은 지방의 민간단체에서 설치한 것이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일본을 상대로 확실하게 설득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매년 2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통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를 매개로 우리 정부의 리더십 공백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지난해 7월부터 김장수 주중대사는 중국 고위인사와 면담조차 잡지 못해 ‘식물 대사’로 전전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에 이어 이달 초 또다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을 환대하며 사드 반대 입장을 강변했다.

중국은 2014년 공사급 부대사로 화제를 모았던 하오샤오페이 후임에 공사보다 한 단계 아래인 진옌광(金燕光) 공사참사관이 부임한 사실을 이날 공개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에는 주중 한국대사관 주최 국경절 리셉션에 외교부 부국장을 보내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통상 행사에는 장ㆍ차관급 인사를 보내던 것에 비해 격을 한참 낮춘 것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1면 기사와 사설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을 괴롭힐 일이 아니라 핵 위협을 줄이도록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일중 양국이 사드와 소녀상을 앞세워 ‘한국 때리기’에 나선 것은 국내 불만을 외부로 돌려 자국민의 여론을 결집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누차 사드 반대를 공언해왔고, 일본도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를 치적으로 내세운 터라 한국에 밀릴 경우 자칫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현 상황을 유지하기도 버거운 형편이다. 때문에 “계획대로 사드 배치를 추진하겠다”, “위안부 합의 이행에 변함이 없다”며 원론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국정공백이 외교공백으로 이어지면서 정부가 중일 양국에게 마치 약점을 잡힌 듯한 모습”이라며 “새로운 걸 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보니 변하는 외부환경에 자신 있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지난 밤사이 내린 눈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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