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사업의 제임스 본드’로 불리는 미국의 억만장자 사업가 찰스 F. 피니(85)가 지난해 말 모교에 거액의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전 재산 사회 환원을 마쳤다.
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피니가 지난달 사회봉사 지원금으로 코넬대에 700만달러(약 83억3,560만원)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2016년 말까지 전 재산 사회 환원을 마무리 짓겠다”고 한 5년 전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거액을 다루는 건 언제나 불안하기 마련인데 그래도 그 일을 꽤 잘해온 것 같다”고 NYT에 소감을 말했다. 지난 33년간 그가 기부한 사적 재산 총액은 80억달러(약 9조5,264억원)에 이른다.
피니는 가난한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 대학 졸업 후 공항 면세점 체인인 듀티프리쇼퍼스(DFS)를 설립했다.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 큰 돈을 번 피니는 “살아있을 때 나눠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자선 사업을 시작했다. 피니는 1984년 ‘애틀란틱 재단’을 만들고 당시 가지고 있던 DFS 지분 39.75%를 전부 이곳에 넘겼다. 재단 재산은 그가 투자한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IT 스타트업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크게 불어났다.
애틀란틱 재단은 그간 교육ㆍ보건ㆍ인권문제와 과학연구 지원에 힘써왔다. 1990년에는 무장투쟁을 접고 선거 정치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북아일랜드 무장단체와 협상을 하기도 했고, 베트남에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치료를 위한 보건 시스템 구축에 기금을 보냈다.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힘써달라며 개발도상국 젊은 인재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니는 한때 ‘냉철한 억만장자’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 그가 모든 기부를 익명으로 했기 때문이다. 피니의 기부금이 전달된 5개 대륙, 1,000여개 기관 건물 그 어느 곳에서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피니의 선행은 1997년 그의 회사가 분규에 휘말려 회계 장부가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곧 ‘자선사업의 제임스 본드’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피니는 “돈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한꺼번에 신발 두 켤레를 신을 순 없다”며 나눔을 실천하고 평생 검소하게 살아왔다. 75세까지는 언제나 이코노미석을 타고 여행했고, 언제나 비닐봉지에 신문을 넣어 들고 다녔다. 뉴욕에 거주하던 시절에도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맨해튼 변두리의 조그마한 햄버거집을 즐겨 찾았다. 역대 미국 자선사업가 중 가장 많은 비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그는 현재 부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NYT는 이러한 피니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정 반대(mirror-images)”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니는 재단 기금으로 남을 도왔지만 트럼프는 사익을 위해 썼고, 애틀란틱 재단의 기금은 피니의 돈으로 조성됐지만 트럼프 재단은 남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신문은 “피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정확히 반대로 산다면 트럼프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유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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