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폐 손상 압도적 원인으로
각종 연구들 ‘살균제’를 지목”
옥시, 인체 유해성 확인도 없이
살균력 발휘할 농도만 신경 써
수많은 인명피해 냈는데
벌금 고작 1억5000만원 선고
존 리 前대표는 “증거부족” 무죄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화학물질이 폐 손상을 유발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음을 법원이 인정했다.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 31일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 미상 폐 손상의 원인으로 추정한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안방의 세월호 참사’가 공론화된 지 5년 5개월여 만이다.
이를 바탕으로 과실로 소비자를 죽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현행법은 금고 5년이 법정최고형이고, 가해기업은 벌금 1억5,000만원만 내면 그만이라 형사적 단죄의 한계가 다시금 부각됐다. 15개월 된 피붙이를 잃은 엄마는 한이 풀리지 못한 듯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돈벌이만 생각하는) 기업이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돼야 합니다.”
“각종 연구, 살균제가 ‘압도적 원인’ 지목”
법원은 6일 “유해 독성화학물질을 주 성분으로 한 (‘옥시싹싹가습기당번’ 등) 가습기 살균제 사용에 따른 흡입독성 반응과 원인 미상 폐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번 참사의 폐질환이 소엽의 폐포 손상 등 다른 질환과 뚜렷이 구별되고 ▦동물실험에서 살균제 주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을 흡입한 동물에서 피해자들과 같은 소견이 관찰됐으며 ▦강제 수거 뒤 새로운 환자가 없었던 점 등 이런 판단에 이르게 한 근거들은 많았다. 자사 제품이 원인이 아니라고 부인하던 옥시조차 국내외 동물실험 결과 PHMG의 강한 흡입독성을 확인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각종 연구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폐 손상의) 압도적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 “옥시, 살균력만 신경썼다”
재판부는 살균제 권장사용량을 제멋대로 정한 옥시를 비판했다. 재판부는 “옥시의 PHMG 에어로졸(기체 안에 부유하는 공기 입자)은 100나노미터 이하의 미세 입자로 공기 중에 떠돌다가 기관지 끝까지 도달한다”며 “옥시의 권장사용량대로 써도 강한 흡입독성의 농도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옥시는) 어느 정도 농도에서 인체 유해성이 발현되는지 확인은 없이, 그저 제품이 살균력을 발휘할 농도만 확인했다”며 “소비자가 기대할 안전성은 (애초) 결여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판단들로 신현우(69)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7년형이 선고됐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99% 아이에게도 안심’등 허위 문구를 넣은 표시광고법 위반의 상한 형량인 금고 5년형과 징역 2년을 합한 법정최고형이다. 신 전 대표는 2000년 10월 연구소장 등과 공모해 안전성 검사도 없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PHMG로 바꾸고, 과학적 근거 없이 치명적인 권장사용량을 결정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면서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썼다는 문구(라벨)을 제품에 붙여 내다팔았다. 위생에 민감한 엄마들이 주로 아이를 위해 썼다가 자식들이 숨을 거두거나 평생 호흡보조기구를 달고 살게 돼 가장 잔인한 죄책감이 부모 가슴에 박힌 참사였다. 재판부도 “고통을 함부로 짐작하기조차 어렵다”면서 유족들을 위로했다.
존 리는 거라브 제인 등 조사 못해 ‘무죄’
신 전 대표에 이어 옥시를 이끈 존 리(49) 전 대표에게는 무죄가 났다. 그가 대표 재직 당시 살균제의 안전성이나 허위 라벨이 거짓임을 의심할 만한 보고라도 받았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보고관계에 있던 거라브 제인 등 전직 외국인 임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직원들의 추측성 진술만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허위 문구로 고의로 제품을 팔았다는 가해기업 전직 대표들의 상습 사기 혐의도 고의로 소비자들을 속였다는 의도가 입증되지 않아 무죄가 났다.
생명은 고려 없이 살균력만 체크한 법인 옥시와 홈플러스, 그리고 세퓨(폐업)는 벌금 1억5,000만원만 낸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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