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몰락
최준식 지음
주류성 발행ㆍ266쪽ㆍ1만6,000원
“네덜란드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홉스테드에 따르면 한 나라의 정치체제는 그 나라 가족제도의 연장에 불과하다. 나는 이 이론에 적극 동의한다. (…)지금 사람들은 개헌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설혹 개헌하는 데 성공해서 4년 중임제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같은 제도가 실현되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뇌리에서 권력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릎을 칠만하다. 물론 제도의 변화는 새로운 큰 물길을 하나 터주는 것이어서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심성에 변화를 불러온다. 그러나 정말 이걸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재빨리 제 엉덩이를 까고 어여 빨리 철썩철썩 쳐달라고 해야 한다고 믿는 여권 지지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무슨 갑질하는 것 마냥 고작 5년짜리 단임 대통령 하나 뽑아주면서 그가 세상을 못 바꾸면 엄청난 죄인이라도 될 것처럼 비난해대는 야권 지지자들도 광야에서 초인을 목놓아 부르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해서 제목은 ‘한국 문화의 몰락’이요, 표지는 매화 그림이요, 출판사는 고고학 서적을 많이 내는 주류성이요, 저자가 ‘웰다잉’을 널리 퍼뜨린 종교학자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라는 건, 어떻게 보면 순전히 페인트 모션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찬찬히 훑어가기보다는 고구마 한 박스를 들이킨 듯 답답함을 깔고 “이제는 정말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피 토하듯 고발하는 책이라서다.
저자가 이처럼 피를 토하는 이유는 역시나 ‘최순실 게이트’ 때문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CF 감독 차은택씨와 연결된 ‘문화융성위원회’ 때문이다. 저자는 2년간 이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문화융성위 출범에 처음엔 반색했다. ‘먹고 살기도 바빠죽겠는데 무슨 얼어죽을 놈의 문화냐’ ‘문화생활하는 거 보니 요즘 좀 한가한가 보네’라는 식의 오랜 고정관념 때문에 문화는 늘 찬밥이었기 때문이다. 문화란 일상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들을 모두 포함한 얘기들인데, 어느 호사스러운 무대에서 어느 유명한 사람이 하는 공연이나 전시 같은 것을 비싼 값 치르고 봐야 문화생활을 누린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게 늘 안타까웠다.
그러나 참여해보니 더 실망이었다. “대통령이 들어오고 회의가 시작됐는데 회의 철칙이 가관”이었다. 뭔가 의견을 낼 준비도 했건만 “자유발언은 대통령만 하고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다”고 했다. “청와대의 회의 문화는 연출된 쇼”에 불과했다. 3시간 내내 멍하니 앉아 있다 나오는 게 전부였다. 이러니 위원들이 하는 일이라곤 가끔 모여 밥 먹고 웅성대는 것뿐이었다. 문화융성위원회가 아니라 문화‘웅성’위원회였다는 자조가 튀어나왔다. 위원회에는 각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다 모였지만, 저자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트로트 가수 설운도였다. 트로트계의 열악한 현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그나마 업적이라고 내놓은 것이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공연, 전시장 티켓 값을 할인해주는 ‘문화가 있는 날’ 제정이다. 없는 시간과 돈을 들여 어디 나가 특별활동이라도 하면 돈을 깎아주겠다는 식의 접근 방법 자체도 문제지만, 그 과정도 코미디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정부는 문화융성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라 발표”했는데 정작 위원이었던 저자는 “신문으로 그 소식을 먼저 알고 회의에 가니까 그렇게 결정되었다고 통보”받았을 뿐이다.
저자는 이 모든 문제의 뿌리를 ‘유교적 가부장주의’라 본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내면’은 문화의 조건이다. 제 나름의 관심사와 세계관을 곱씹어 생각하면서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고, 서로가 서로의 그런 측면을 인정해야 문화가 생긴다. 배배 꼬아둔 건물에서 와인 마시면 문화고, 집에서 부침개에 막걸리 마신다고 문화가 아닌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튀지 말라’는 강박이 지배하는 ‘내 가족 유일주의’ 세계에서 ‘개인의 내면’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을 턱이 없다. 만나면 나이를 따져 형ㆍ오빠ㆍ누나ㆍ언니를 정하고 존대말과 반말이 허용되는 서열 관계를 정리한 뒤 형 노릇, 동생 노릇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에게 ‘너와 내가 동등하게 지니고 있는 개인의 내면’ 따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나마 돈 되는 일도 아니라는 이유로 “책을 가까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만의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만나봤자 “서로 대화할 거리가 없다”. 그러니 늘 하는 게 먹고 마시고 노는 얘기, 골프 얘기, 정치 얘기뿐이다. 정치 얘기라는 것도 북핵 문제 해법, 시리아 난민 문제 같은 게 아니라 그저 밑도 끝도 없는 편 가르기, 음모론과 모조리 싸잡아 욕하기뿐이다.
저자는 이를 ‘무(無)문화’라 부른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냥 문화가 없다는 얘기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특히 탄생, 돌잔치, 결혼, 장례, 제사 문화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죽은 이를 기리는 행위는 사람 인생에서 일종의 ‘매듭’이다. 매듭에는 의례적이고 상징적인 무엇이 끼어든다. 이 의례와 상징은 문화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 문화에서 우리에게 남은 건 “먹는 것이 힘들었던 때라 손님 오면 음식 대접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던 과거뿐이다. 기쁨, 축하, 공감, 위로, 추모 따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을뿐더러, 서로서로 아무런 기대조차 않는다. 눈도장 찍고 돈 내고 밥 먹고, 끝이다.
읽고 나면 속이 후련하지만, 문화는 쉽지 않은 문제다. 저자도 자기 자식의 결혼식은 어쩌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그럼에도, 저자처럼 누군가는 계속 외쳐대야 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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