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설립 135명 전원 고용 예정
학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총학생회 등 구성원들 노력 성과
다른 대학 변화 이끌어낼지 주목
경희대가 자회사를 세워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한 지난달 7일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영란(왼쪽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경희대 부분회장, 이승영 분회장, 정주희 전 총학생회장, 단재민 전 부총학생회장. 정주희씨 제공.

“드디어 우리가 주인공이 된 거죠.”

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캠퍼스에서 만난 백영란(61ㆍ여)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경희대분회 부분회장의 작은 어깨는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지난달 7일 경희대가 산학협력단이 100% 출자하는 자회사를 세워 서울캠퍼스 청소노동자 135명을 전원 고용한다는 내용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법률 검토를 거쳐 올해 3월 자회사 설립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백 부분회장은 “10년, 20년을 같은 곳에서 근무해도 용역업체가 바뀌면 늘 신입사원 신세인데 이제는 불안에 떨지 않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농성 사태(2011년) 이후 대학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고용불안 문제가 공론화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열악한 처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자회사를 통해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희대의 실험이 주목 받고 있다.

경희대는 2015년 5월부터 학교와 청소노조,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사다리포럼’을 만들어 학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경희모델’을 추진해 왔다. 처음엔 대학이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안이 제시됐지만 곧 난관에 부닥쳤다. 노동자 대부분이 60대 중반이지만 대학 정년은 60세였기 때문. 서울시립대처럼 일부 노동자만 직접 고용하고 정년이 넘은 직원은 계약직으로 둬 또 다른 갈등을 부르는 분열도 피해야 했다. 그래서 그 해 10월 노사가 머리를 맞댄 대안이 학교법인(경희학원) 산하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이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건 쉽지 않았다. 두 달이면 끝날 듯했던 세부안 도출은 해를 넘겨도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사립학교법상 비영리법인인 학교법인 밑에 자회사를 만들려면 법적 문제가 많았고, 경희학원 측도 재정ㆍ인사의 어려움을 들어 자회사 설립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청소노조는 결국 용역회사와 재계약을 앞둔 지난달 2일 최후 수단으로 총장실을 점거하고 약속이행을 요구했다. 이후 노사 대화 자리가 마련돼 산학협력단 아래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자회사를 세우는 안이 최종 채택됐다.

학교 구성원들의 의지와 신뢰는 쉽지 않던 합의를 이뤄낸 원동력이었다. 학생들부터 발 벗고 나섰다. 총학생회는 지난해 ‘청소노동자 직접고용’을 공약으로 내걸고 경희모델의 필요성을 학내외에 알렸다. 정주희(23ㆍ여) 전 총학생회장은 “고용개선을 요구하면서도 파업을 자제하는 등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려는 청소노동자들의 배려에 학생들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사다리포럼에 참여한 임주환 변호사는 “노사가 신뢰로 똘똘 뭉쳐 수많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직원 채용 시 노조와 합의하는 식으로 자회사 경영에 노동자 참여가 보장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백 부분회장은 “노동자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친환경 청소 방법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서울시내 38개 대학 중 33곳이 청소노동자를 용역업체 등을 통해 간접고용하고 있다(2015년 11월 기준). 직ㆍ간접고용이 혼재된 대학들도 간접고용자 숫자가 훨씬 많다. 학교 구성원들은 경희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해 다른 대학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소망하고 있다. 경희대 관계자는 “자회사가 중심이 돼 회기동 일대에 문화예술 거리를 조성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새로운 전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백 부분회장 역시 “1년 안에 자회사를 성공시켜 직접고용이 옳은 선택이란 걸 증명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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