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우/사진=임민환 기자
[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KIA 최형우(34)에게는 이제 '100억원의 사나이'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최고의 선수로 인정 받는 동시에 그 만큼의 책임감을 짊어지게 됐다.
최형우는 지난해 11월 말 KIA와 4년간 총 100억원(계약금 40억, 연봉 15억원)에 FA(프리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역대 FA 사상 최고액이다. 2002년 삼성 2차 6라운드 48순위로 입단했지만 2005년 방출돼 선수 생활의 기로에 섰던 10여 년 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인생역전이다. 대가 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다. 그는 아직도 방출의 아픔을 잊지 않았다.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너 왜 쉬어, 할 수 있잖아"라며 스스로를 꾸짖는다.
이제 다시 뛰는 2017년이다. 그는 "정말 중요한 한 해다.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겠다"며 또 다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2002년 신인으로 삼성에 들어왔고, 2008년 삼성에 재입단했다. 이번에 KIA로 옮겨 벌써 세 번째 입단이다.
"맞다. 그러고 보니 진짜 세 번째다.(웃음) 처음 19살에 삼성에 갔을 때는 '프로라는 세계가 정말 어마어마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야구단을 다녀온 뒤 재입단했을 때는 즐기려고 했던 것 같다. 여기서 또 안 되면 내가 실력이 없어 잘리는 것이니까 신나고 즐겁게 다 쏟아보자 라는 생각으로 갔다. 그게 마침 통했고. 지금은 또 다르다. 기분 좋을 만큼의 책임감과 함께 약간의 부담감도 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쳐다봐 주시는 만큼 나도 더 강하고 독하게 마음 먹어야 하고. 즐겁고 행복한 것도 있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야구 인생의 굴곡이 컸다. 가장 인상적인 때를 꼽는다면.
"군(경찰 야구단) 제대 후 KBO리그 신인왕을 받았을 때(2008년)다. 생각보다 쉽게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내가 예전에 얼마나 못했고, 능력이 없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출되기 전에는 1군에도 거의 못 올라갔고, 1군에 잠깐 왔다가도 바로 2군에 가곤 했었다. 그런데 재입단 후에는 '어떻게 이렇게 되지' 싶을 정도로 잘 풀렸던 것 같다. 시즌 중반 넘어서까지도 내가 신인왕을 탈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최형우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 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방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야구를 해왔다.
"사실 포기했다.(웃음) 방출되고 나서 한 동안 다른 팀에서도 연락이 없었고, 군대도 안 갔다 온 상황이었고, 돈도 없었다. 완전히 포기하고 두 달 정도 다른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면서 살고 있던 중에 마지막 희망이 경찰 야구단이었다. 거기에 합격하면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야구 선수 최형우'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야구장을 잘 안 비운다는 게 장점인 선수 같다. 예전 (방출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어디 좀 아프다고 빠지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생각이 몸에 배어있다. 내가 부진할 때 팬들도 좀 빠지라고 하고,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나는 이게 내 일이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야구장에 있었던 게 장점 같다. 그러다 보니 꾸준함도 생기는 거고."
-그래서인지 꾸준한 선수라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 비결이 있나.
"그렇게 인정 받고 싶다. 더, 더 그렇게 인정을 받고 싶다. 자기관리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아파도 남들에게 내색 안하고, 속으로 앓고 그냥 하는 성격이 있다. 나이 먹어가면서 '그냥 하자, 이 정도 가지고 빠지면 되겠나'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팀의 중심타자로 뛰었고, 스타로 자리를 잡았는데도 '누군가 내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불안이 있나.
"이제는 그런 게 그냥 몸에 배어있는 거다. '누구'를 의식하기보다 알아서 몸이 반응을 한다. 스스로 '너 왜 쉬어, 쉬면 안 돼. 할 수 있잖아' 그런 게 돼 있다. 몸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걸 잘 가지고 온 것 같다.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그런 마인드다. 다른 사람들이 안 갖고 있는 걸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사상 첫 총액 100억원의 선수가 됐다.
"새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예전에는 FA를 생각도 안 했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일어났다."
-올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으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생각도 안 해봤다. 살면서 내가 나라를 위해 뛸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해 12월에 처음 소집일이 있었는데 다들 이야기하고 편해 보이는데 나 혼자 어색하더라.(웃음) 다 친한 선수들이니까 조금 지나고 나서는 좀 나아졌지만. 그 자리에 내가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경기를 나가서 뛰는 건 아직 잘 그려지지 않지만, 대표팀의 분위기도 아주 괜찮은 것 같다."
-선수로서 국가대표에 대한 의미는 더 크지 않나.
"의미는 있지만, 의미를 찾기 전에 국가대표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예전에 신인왕이 머릿속에 전혀 없었고, FA가 없었듯 국가대표가 되리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야구를) 잘 할 때도 대표팀에 못 뽑힌 적도 있다. '아, 나는 국가대표를 머리에서 없애자'하고 살았다."
-늦은 나이에 첫 태극마크다.
"인생 자체가 늦었다.(웃음) 속도가 느리다. 그래도 방향은 잘 가고 있으니까. 처음엔 안 좋았지만 그 이후로는 잘 풀어나가고 잇는 것 같다.(웃음)"
-올 해 정규시즌 개막전이 특별하다.
"개막전(3월31일)부터 대구 삼성전이더라. 그래도 이제 매번 만날 팀이다. 어떻게든 이제는 KIA를 위해, 우리 팀이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 기록 같은 건 다 필요 없고, 내가 이 팀에 온 걸로 마이너스가 안 되게, 팀에 보탬이 돼야 한다. 쉬운 말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하다 보면 더 좋아질 것이고, 팀 순위도 좋게 될 수 있고. 가장 먼저 할 건 내가 하던 대로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KIA에서 함께 뛰게 돼 기대되는 선수들이 있나.
"(이)범호 형과 (김)주찬이 형이다. 주찬이 형과는 예전부터 같이 뛰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진 게 너무 많은 타자다. 장타도 치고 발도 빨라 주루도, 수비도 잘 한다. 항상 상대로 봤을 때 얄미울 정도로 잘 하더라. 범호 형도 마찬가지다. 묵묵히 그 자리에서 잘 하는 분이니까. 투수들 중에서는 (윤)석민이랑도 같이 해보고 싶었다."
-2017년은 최형우에게 어떤 의미일까.
"정말 중요한 한 해다.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훈련을 할 것이다. 그것도 잠깐만 생각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 생각에 너무 빠지면 압박감 때문에 기량 발휘를 못할 것 같다. 책임감을 갖고 내가 원래 준비하던 대로 하겠다."
-FA 최고액 선수가 됐다. 최형우의 남은 꿈은.
"솔직히 없다. 야구를 더 오래 하고 싶고,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만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리 이탈하고 그런 것 없이 내 자리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잘 해 우리 나라 통산 기록을 바꿀 능력은 안 되지 않나. 그저 한결 같이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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