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5

"검은 레오나르도" 조지 워싱턴 카버가 1943년 오늘 별세했다.

“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 불렸던 미국 흑인 노예 출신 식물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가 1943년 1월 5일 별세했다. 향년 80세(추정).

미주리 주 다이아몬드 시의 흑인 노예 메리와 질에게서 1864년 경 태어난 그는 생후 1주일 만에 엄마와 누나와 함께 노예 상인에 의해 납치 당했다. 그의 주인이던 모세 카버(Moses Carver)와 아내 수전(Susan)은 노예제도에 부정적인 크리스천이었지만, 농사 일손이 필요해 메리 부부를 사들인 경우였다. 모세는 어렵사리 갓난 아이였던 조지만 되찾아 아들처럼 길렀고, 집에서 글을 가르쳤다. 조지는 빼어난 영특함으로 양부모와 다름없던 카버 부부에게 보람과 기쁨을 선사하곤 했고, 특히 어려서부터 식물을 키우고 보살피는 데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노예제가 폐지된 건 그의 10살 무렵이었다. 그는 흑인이 다닐 수 있던 가장 가까운 학교에 다니느라 왕복 32km씩 걷곤 했고, 운 좋게 좋은 이웃을 만나 기숙하기도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카버의 조지(Carver’s George)라 불리던 그에게 성과 이름(Geooge Carver)을 ‘제대로’ 붙여준 것도 한 하숙집 아주머니였다. 그는 1890년 아이오와의 심슨칼리지 예술대학에 진학했다가 좋은 교수를 만나 이듬해 아이오와주립대 농학부에 편입학, 94년 졸업했다. 그는 아이오와주립대 최초의 흑인 학생이었다.

그가 흑인대학인 앨라배마 터스커기대 농학부 교수로 만 47년간 재직하며 이룬 업적은 꽤 알려져 있다. 1892년 바구미병으로 위기를 맞은 남부 면화농업을 대체해 콩과 땅콩을 돌려 짓도록 함으로써 작물 생산성과 환금성을 개선한 일, 부가가치를 위해 땅콩버터 등 140여 종의 콩 가공법을 개발해 보급한 일, 그럼으로써 가난한 해방 노예들의 식량과 자립기반 마련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일, 무엇보다 수많은 농학자들을 양성한 일 등. 포드 재단은 말년 거동이 불편해진 그를 위해 대학 내 엘리베이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독신으로 살았고, 사후 재산으로 커버재단이 설립됐다. 묘비에는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고, 오직 세상을 돕는 일에서 행복과 명예를 찾고자 했다”고 새겨졌다. 51년 미국 정부는 그가 유년을 보낸 다이아몬드 시에 흑인의 삶을 기리는 최초의 기념물을 세웠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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