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촌주가 중앙 관리에게 잘못을 아뢰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 형식의 신라 목간(6세기 중반)이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됐다. 신라 중앙 정부가 율령을 통해 엄격하게 지방을 통제ㆍ지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4일 사적인 성산산성에 대한 17차 발굴조사(2014~2016년) 결과 신라 지방 지배체계를 구명할 수 있는 사면목간 1점을 출토했다고 밝혔다. 목간은 종이 발명 전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다듬어 놓은 나무 조각으로 1991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총 308점이 출토됐는데, 사면 모두 문자가 기록돼 있는 것은 단 3점뿐이다.
“3월에 진내멸촌주가 두려워하며 삼가 아룁니다”로 시작되는 해당 목간에는 ‘잘못된 법 집행을 실시한 것에 대한 잘못을 고하며 어리석음을 고한다’고 기록돼 있다. 기간을 명시하는 법률 용어인 ‘□법30대’ ‘60일대’ 등이 목간에 기록돼 있어 신라시대 법률인 율령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특히 ‘경위’(京位ㆍ신라 중앙 관리의 관등체계로 17등급으로 구분) 중 12등급인 ‘대사’(大舍)라는 관등명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신라 중앙 정부가 율령을 통해 지방까지 엄격히 통제ㆍ지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동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에서는 신라 지방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관등체계인 ‘외위’(外位ㆍ11등급으로 구분) 관등명만 확인됐었다.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지 않은 ‘급벌척’(及伐尺)이라는 외위 관등명이 새롭게 등장해 신라 관등체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목간학회장을 맡고 있는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지방의 최고위층이 등급이 그다지 높지 않은 중앙 관리에게 공포감에 휩싸여 잘못을 고하고 있다는 것은 6세기 중반 신라 율령이 강고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김용민 실장은 “사면목간 자체가 흔치 않은 데다 처음부터 문서 작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목간인 만큼 보고서의 기승전결이 잘 갖춰져 있다”며 “6세기 중반경 신라 지방사회까지 문서행정이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추정케 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위치한 성산산성은 산성둘레가 약 1.4㎞에 이르는 긴 타원형으로, 신라가 6세기 중반 일본의 침입에 대비해 축성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1991년 시작해 지난해 완료된 발굴조사에서는 목간 308점 등을 포함해 총 2,321점의 유물을 찾아냈으며 부엽층, 동ㆍ서ㆍ남문지, 이중 체성벽, 저수지 등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출토 목간 308점 중 문자가 남아 있는 목간 255점은 대부분 하찰목간(어디에 사는 누가 어떠한 물건을 얼마나 보낸다는 형식)으로 신라의 납세 형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금까지 출토된 목간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2017년 말 책자를 발간할 예정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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