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잠정치
수주 절벽에 잇따른 계약 취소 탓
韓 1992만CGT〈 日 2006만CGT
“日업체 자국 물량 일시적 현상”1990년대 중반 한국 조선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조선업황이 호조를 보이며 전세계 선박 발주량이 매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한국 조선업체들은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94년 삼성중공업이 대형 유조선을 건조할 수 있는 제3도크를 완공한 것을 시작으로, 95년 현대중공업이 제8,9호 도크를 지었다. 한라중공업도 96년 전남 영암군에 88만평 규모의 대형 조선소(현 현대삼호중공업)를 만들었다.
반면 세계 1위였던 일본 조선업은 70년대 이후 두 차례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간신히 연명했다. 석유 파동으로 선박 수요가 줄자 일본 정부는 조선업을 사양산업으로 여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일본 조선업체의 생산 능력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세계 조선업계에 호황이 찾아오자 한국 조선업체들은 수주를 싹쓸이했다. 그 결과 2001년 1월 한국의 선박 수주잔량은 1,059만CGT(표준화물환산톤수)로 일본(1,057만CGT)을 앞질렀다.
이후 한국 조선업은 일본에게 뒤처진 적이 없다. 2008년엔 한국과 일본의 수주잔량 격차가 3,160만CGT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7년만에 한국 조선업이 다시 따라 잡혔다.
4일 영국의 조선ㆍ해운 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한국의 선박 수주 잔량(잠정치)은 1,991만6,852CGT(473척), 일본은 2,006만4,685CGT(835척)로 각각 집계됐다. 2000년대 중반까지 수주 잔량에서 세계 1위를 지켰던 한국이 2008년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이젠 일본에게까지 추월을 당한 것이다.
한국은 2015년엔 평균 3,000만CGT 이상의 일감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발주 가뭄으로 수주가 급감하며 남은 일감은 빠르게 줄었다. 일본도 2015년 12월 2,555만CGT로 수주 잔량에 정점을 찍은 이후 일감이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한국보다는 감소폭이 적었다.
수주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계약 취소가 잇따르는 점도 수주 잔량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신규 수주한 금액(약 67억달러)보다 계약 해지된 금액(약 86억달러)이 더 많았다.
때문에 ‘빅3’ 조선사들은 올해 경영 목표로 생존을 내걸었다. 올해 전체 수주 목표를 작년보다 낮춘 60억달러 수준에 맞추고 원가 절감과 수익 극대화에 나설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수주 잔량 추월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의 선박 인도량은 1,140만CGT로 일본의 670만CGT보다 월등히 많았는데 이 점이 반영된 것”이라며 “일본 조선업체들은 자국 발주 물량을 대부분 수주해 일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조선업체들의 경쟁력이 일본보다 약해졌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