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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나는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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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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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영(44)씨가 지난달 26일 새해 소망을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요동치는 2016년 세밑 누구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낸 이들을 만났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마저 일상이 되어버린 세월호 유족과 먹고살 길이 막막한 치킨집 사장님, 사죄 없는 합의문과의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흘려 보내기엔 사무친 억울함과 아쉬움이 깊어 보였다.

차가운 거리에서 농성장에서 일터에서 마주친 그들에게 무작정 새하얀 도화지를 내밀었다. 비정상으로 얼룩진 지난 기억은 접고 새해 소망을 적어 달라 요청했다. 수줍게 써내려 간 그들의 바람은 명확하고 간절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이옥선(91)씨가 지난달 27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자신의 방에서 새해 소망을 밝히고 있다. 한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 모르는 이씨는 기자가 써 준 문구를 보고 스케치북에 다시 옮겨 그렸다.

#1 ‘무조건 사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1) 할머니는 새해 소망을 일본정부의 ‘무조건 사죄’라고 적었다. 지난달 27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이씨는 “내일이면 1년인데 그 합의가 완전히 잘못됐어. 피해자하고 합의를 해야지 어드매 가서 합의를 했나”라며 일본정부의 사죄 없는 한일위안부합의를 비판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최근 성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씨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일 정부의 ‘합의’라는 잔혹한 ‘2차 가해’로 인해 전에 없던 아픔과 슬픔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 일본정부가 출연하고 한국정부가 수령을 종용하고 있는 ‘치유금’에 대해서도 이씨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부가 돈 받고 할머니들 다시 팔아먹은 거지. 우리는 명예를 회복받자는 거지 돈 문제가 아니야.”

현재 국내 생존 위안부 피해자는 불과 39명, 지난해에만 7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그놈들은 할머니들이 조용히 죽기만 기다리는 것 같은데, 설령 우리가 다 죽고 없어도 이 문제만은 꼭 해결돼야 해”라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 예은이 아빠 유경근(47)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새해 소망을 적은 스케치북을 들어 보이고 있다.

#2 ‘진실을 인양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목숨 걸고 밝히고 싶었던 ‘7시간의 진실’이 차츰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이를 잃은 유경근(47)씨는 국민적 관심과 응원에 힘입어 진실규명의 희망을 다시 키우고 있다. 지난달 28일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유씨는 새해엔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와 함께 진실이 인양되길 간절히 소망했다.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씨에게 지난 한 해는 유독 힘든 시간이었다. “매일 거리로 나섰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아이들의 기억교실이 단원고 밖으로 옮겨졌고 특별조사위원회는 허무하게 해산돼 버렸죠.”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족들도 걱정이다. 유씨는“상담치료 같은 정부 지원이 끝난 지 오래라 개인이 알아서 이겨내야 하는데 딱히 방법이 안 보인다”며 한숨을 지었다.

다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진실규명을 위한 불씨가 살아난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유씨는 “이런 기대와 희망의 원동력이 국민의 힘이고, 그 힘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아홉 번 참가한 이두선(35)씨 가족이 지난달 26일 촛불집회가 열렸던 경기 남양주시 이마트 앞 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씨 부부는 거주지인 남양주시에서도 촛불 집회를 두 차례 제안, 개최했다.

#3 ‘정정당당한 새 나라가 되길…’

“촛불 집회 나가느라 놀이공원도 못 가고 단풍구경은 시내에서 해결했지만 보람도 컸어요.”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이두선(35)씨는 아내와 함께 세 살, 10개월 된 두 딸을 데리고 아홉 번의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성탄전야 집회만 아이들 감기 탓에 빠졌다. “상식을 넘어선 국정농단에 너무 화가 나 참가하게 됐다”는 아내 석미나(34)씨는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는 순간엔 오히려 “굉장히 슬펐다”고 했다. 석씨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이 탄핵하는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어린 아이들과 함께 대규모 집회에 참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군중 속에서 이동이 쉽지 않다 보니 큰 아이가 옷에 실례를 했고, 엄마는 막내를 안고 수유실을 찾아 헤맸다. 어려움을 경험한 이씨 부부는 비슷한 처지의 참가자를 위해 동십자각 주변에 수유 텐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석씨는 “어묵 200인분을 준비해 나오거나 LED 촛불을 나누어주는 시민들 모습이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세월호 참사에 이어 백남기씨 부검 시도나 최순실 사태에서 국가가 또다시 감추려고만 드는 데 실망이 컸죠. 부디 제대로 된 대통령 뽑아서 정정당당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영(44)씨가 지난달 26일 새해 소망을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4 ‘계란이라도 맘 편히 먹고 살자’

지난달 26일, 예년 같았으면 연말 회식 손님으로 북적거렸을 서울 중구 신당동 김미영(44)씨의 치킨집은 한산했다. 김씨는 한탄 섞인 넋두리를 쏟아냈다. “AI 때문에 생닭 공급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게를 계속 운영할 자신이 없어요. 정부가 ‘언제쯤이면 정상화 될 것’이라고만 밝혀줘도 좋겠는데 아무런 조치도 희망도 없고… 이 정부는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요.”

‘김영란법’때문에 회식 손님이 크게 준데다 국정농단 사태까지 터지면서 지난해 매출은 바닥을 기었다. 김씨는 “이 상태가 계속돼 폐업하면 순식간에 2억~3억원을 날리는 상황”이라며 “나라에서 자영업자들에게 세금 감면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이라며 아쉬워했다.

때마침 TV에서 흘러나온 청문회 관련 뉴스에 김씨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저 사람들은 계속 ‘모른다’만 되풀이 하는데 결국 우리가 낸 세금 가지고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른 거 아닌가요. 오죽하면 이민을 다 생각했다니까요. 계란도 맘대로 못 먹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4)군과 엄마 권미애(40)씨가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5 ‘산소호흡기 떼고 자유로워지기’

“아침에 눈을 뜨면 성준이가 산소호흡기 없이 뛰어다니는 기적을 상상해요.” 권미애(40)씨의 새해 소망은 아들 임성준(14)군의 소망과 같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만성 폐질환을 앓게 된 성준이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옥시 한국 대표의 사과 회견은 물론 영국 본사 항의 방문까지 성준이 곁엔 커다란 산소호흡기가 지키고 있었다. 집에서도 10m 길이의 산소 공급 선을 달고 생활한다.

학교생활은커녕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권씨는 가슴이 미어졌다. 누구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내면서도 절망할 틈은 없었다. 권씨는 “이젠 더 이상 옥시를 원망하지 않으려고요. 그 시간을 차라리 아들과 즐겁게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권씨에겐 소망이 하나 더 있다. “옥시 영국 본사도 사과를 했는데 판매 허가를 내주고 문제 없다던 우리 정부는 사과를 안 해요. 법원부터 기자회견까지 쫓아 다녔지만 도망치기만 급급하고… 살아 생전 사과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라며 권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개성공단 입주 영업기업 대표 윤석규(55)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농성장 앞에서 새해 소망을 밝히고 있다.

#6 ‘우리는 다시 개성에서 일하고 싶다’

“우리 개성공단 기업들이 통일의 길목을 닦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루아침에 쫓겨나듯 떠나오고 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2004년 시범단지 시절부터 개성공단에서 물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기업을 운영해온 윤석규(55)씨는 그동안 일궈 온 일터만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사무친다. 윤씨는 “지난 13년간 남북 정세에 따라 잠정 폐쇄와 재가동을 거듭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상황이 다르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 도발에 맞선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는 입주 기업들엔 날벼락이었다. 쫓기듯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이후 윤씨는 영업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정부 지원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윤씨를 비롯한 66개 영업기업의 대표는 지난달부터 정부의 충분한 투자지원과 피해액 보상을 요구하는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선 이들의 새해 소망은 한결 같다. “하루빨리 남북관계가 개선돼 개성으로 돌아가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하는 20대 무기계약직 근로자 이정수(가명)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사 내 스크린도어 앞에 섰다. 이씨는 인터뷰와 사진촬영에는 응하면서도 얼굴과 인적 사항 등의 공개를 꺼려했다.

#7 ‘정규직 신분으로 안전근무 생활안정’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하는 이정수(가명ㆍ20대)씨는 얼굴과 인적 사항 공개를 한사코 거부했다. 고용주에 의한 불이익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비정규직임을 아직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해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모씨의 직장 동료다. 엄청난 충격 속에서 정규직을 대신해 사고 뒷수습까지 하며 분노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당시 비정규직 근로자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이 알려지며 비난이 일자 서울메트로와 서울시는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기다리라’는 말만 믿었던 이씨에게 돌아온 건 무기계약직, 소속만 서울메트로로 바뀌었을 뿐 근로조건이나 급여 등이 정규직에 한참 못 미쳤다.

이씨는 “구의역 사고로 불안해 하던 가족들이 9월 공기업 정규직이 됐다며 기뻐하는 모습에 차마 현실을 알리지 못하고 속앓이 중”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아직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놓지 않은 이씨는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스크린도어 앞에 섰다. 그리곤 “정규직 신분으로 안전한 근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들어 보였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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