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취재원의 머리칼이 막 깎은 잔디 같았다.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나온 여권 인사다. “삭발한 머리털이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유가 이랬다. “국정농단 사태에 기여한 부역자라면 부역자로서 이렇게라도 석고대죄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를 ‘세월호 참사’라고 부르면 선임에게 꾸중을 듣는 곳이었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청와대에서 일한 잘못, 말단 행정관도 갖는 죄의식을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대통령을 그 집의 주인으로 만든 책임에 대한 참회였다.
새누리당 사무처 당직자 출신 9명은 지난해 마지막 날 정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새해부터 개혁보수신당(가칭)으로 출근하고 있다. 1995년 당직자로 입사한 국장급부터 2014년 들어온 말단 직원까지 연령과 직급도 다양하다. 1월 1일 예정된 국장급 승진을 하루 앞두고 나온 이도 있다고 한다. 기업으로 치자면, 새누리당은 안정된 중견회사고 신당은 아직 간판도 없는 벤처 수준이다. 당장 월급이 나올지 여부도 불투명한 신당으로 이들을 이끈 것 역시 수치스러움이었다. “너무 부끄러웠어요. 특히 초등생 조카에게.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었어요.” “욕 먹으면서 편안하게 앉아 있느니 서있어야 하더라도 옳은 길로 가자 싶어 결심했죠.”
1,0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아직도 촛불을 드는 이유도 결국은 반성과 각성이다. 자신을 도운 말단 당직자부터 청와대 직원까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참회를 하고 있지만, 그들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권한이 정지된 때인데도 새해가 됐다고 출입기자들과 차를 마시며 자신의 무고함을 강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엔 “손톱만큼도” 잘못이 없는 자신을 국정농단에 “엮는” 현재의 상황이 그저 “어이없다”는 생각뿐인 듯하다. 신당 관계자는 “여전히 박 대통령의 정신 세계는 ‘안드로메다’에 가 있거나 참모들이 완전히 잘못된 허위 보고로 그를 세뇌시킨 것 아닌가 싶었다”며 혀를 찼다. 참회는 부끄러움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수치를 느껴야 할 이는 그저 당당하기만 하다. 왜 늘 부끄러움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몫이어야 하는가. 김지은 정치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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