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복지부 조사 의뢰 전
방문확인ㆍ자료제출 단계서 발생
의사단체들, 이중 조사 부담 호소
의료비 부당청구 혐의로 보건당국의 조사를 받던 의사가 자살하는 일이 다시 발생하면서 의사단체의 제도 개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당국은 지난해 7월 경기 안산시 비뇨기과 개원의 자살 이후 5개월 만에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자 당혹해 하면서도 부당청구 조사는 적법 조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3일 의료계와 보건당국에 따르면 강원 강릉시에서 비뇨기과 의원을 운영하던 의사 A씨가 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지난해 10월부터 관할 지역의 건강보험공단 지역본부 및 지사로부터 “비급여 진료(환자 본인이 진료비 전액 부담)를 하고도 건보공단에 보험금을 청구한 사실이 발견됐다”며 방문확인 및 자료제출 요구를 받았지만, “보건복지부로부터 직접 조사 받겠다”며 공단 요청을 거부했다. 건보공단의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은 복지부 현지조사의 예비조사 성격으로, 부당청구 금액이 행정처분 기준 미만이면 청구액을 자체 환수하고 이상이면 복지부에 조사를 의뢰한다.
대한의사협회와 비뇨기과의사회는 건보공단이 강제조사권이나 행정처분권이 없는데도 A씨에게 권한 밖의 처벌을 거론하며 고압적 태도를 취해 자살로 내몰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홍선 비뇨기과의사회장은 “고인이 공단 대신 상급기관인 복지부의 실사를 받겠다고 하니 공단 조사원이 ‘조사를 거부하면 최고 1년 간의 자격정지와 검찰 고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겁을 줬다고 한다"고 말했다. 해당 조사원이 공단의 내부 지침을 어겼다는 것이다. 지침에 따르면 공단 조사를 거부하는 부당청구 혐의자에 대해 공단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복지부 조사 의뢰뿐이다. 조사 거부에 따른 행정처분(자격정지) 및 고발 역시 복지부 현지조사 단계에서 적용된다.
건보공단은 강압 조사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담당 직원 및 기관을 조사한 결과 문제의 발언이나 태도를 취한 적이 없다고 한다”며 “유족 측에서 해당 직원이나 공단을 고발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공단은 A씨를 찾은 환자의 진료내역에서 부당청구 의혹이 포착돼 정상적 조사 절차를 밟았으며, A씨가 공단 조사를 끝내 거부해 지난달 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했다는 입장이다.
의사단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건보공단의 현장방문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건보공단이 의료기관에 대한 조사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부당청구 조사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라며 “의료기관은 복지부 현지조사까지 더해 이중삼중의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의협은 의사들이 부당청구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건보 급여 적용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안산 개원의에 이어 A씨 역시 사마귀 제거 시술 비용 청구가 문제가 됐는데, 현행 기준에선 사마귀가 난 부위마다 보험 적용 여부가 달라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의협 요구에 신중한 반응이다. 복지부 현지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한 안산 개원의 사건을 계기로 의사단체 요구를 대거 받아들여 조사 지침을 개정(1월 1일 시행)한 만큼 제도 정착에 주력할 때라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지만, 의료비 부당청구 조사는 의료체계를 유지하고 건보 재정을 안정화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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