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ㆍ시진핑ㆍ푸틴 등
충돌 위험에도 ‘마초’ 행보
국제 사회 분열 가속화 우려
지구촌에 때아닌 민족주의 리더십이 득세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강대국 정상 자리를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고 대중을 선동하는 이른바 ‘스트롱맨(Strongmanㆍ마초)’ 정치인들이 줄줄이 꿰차면서다. 이들은 외부의 적을 상정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분열과 충돌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기디언 레크먼은 3일(현지시간)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와 터키 등 전 세계 주요국에서 회고적 민족주의(Nostalgic nationalism)가 다시 득세하고 있다”며 “국가 재건의 열망은 외부 세력을 적대시하고 내부의 반(反)민족주의 세력을 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회고적 민족주의는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로 대중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전략이다.
민족주의 부활에 앞장서는 지도자로는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꼽힌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슬로건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트럼프보다 먼저 2012년 11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천명하며 민족주의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같은 해 크렘린 궁에 복귀하며 ‘소련의 재건’을 선언했다.
스트롱맨들에게 민족주의는 강력한 내수용 정치 도구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본을 아시아의 맹주로 만든 ‘메이지(明治) 유신’을 고평가하며 자위대 부활과 평화헌법 개정 등 일본의 극우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힌두 문화의 자부심을 강조하며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공언한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헝가리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헝가리 오르반 빅트로 총리 모두 강력한 국정 장악력을 자랑한다.
민주주의의 발흥지인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결정에는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어하는 영국인들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프랑스에선 ‘난민 반대’를 외치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급부상했다. 레크먼은 칼럼에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민족주의에 면역이 돼 있다고 생각하면 명백한 오산”이라고 꼬집었다.
민족주의 부활의 배경으로는 세계화, 난민 유입,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사회ㆍ경제적 위기가 지목된다. 세계의 부가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로 쏠리며 서구 국가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증폭된 것도 한 요인이다. 아울러 민족주의는 빠른 전염성을 특징으로 한다. 트럼프는 브렉시트 결정 과정을 지켜보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며, 평소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레크먼은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푸틴이나 시진핑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자기 역사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 외국이 잘못한 점에 치우치기 쉽다”고 추가적인 충돌을 우려했다.
정지용 기자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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