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런 일을 시도할 만큼 충분한 ‘바보’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86세의 에드 휘틀록은 지난해 10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토론토 워터프론트 마라톤에서 42.195km의 코스를 3시간56분34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저 기록이 특별한 건 그의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193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휘틀록은 올해로 86세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안에 주파한 세계 최고령자로, 종전에 자신이 보유한 세계 기록(82세ㆍ3시간41분58초)을 경신했다.
범상치 않은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할 것 같지만, 뉴욕타임스가지난해 12월 29일자에 소개한 그의 일상은 너무 평범한 탓에 오히려 특이해 보인다. 그는 코치도 없고, 특별한 식단을 따르지도 않고, 휴식을 위해 정기적인 마사지를 받지도 않는다. 여름엔 정원을 가꾸고 겨울엔 눈을 치우는 수준의 육체 노동을 할 뿐, 팔굽혀 펴기 같은 운동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회가 있는 날이 아니라면 스트레칭도 피한다. 훈련은 집 근처에 있는 묘지를 하루에 한 번 3시간에서 3시간30분 정도 뛰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최신 훈련 장비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기록을 달성한 10월의 마라톤 대회에서도 15년 된 신발을 신고, 30년 된 러닝셔츠를 입고 뛰었다.
에드 휘틀록은 대학 시절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활동한 적은 있지만, 전문적인 마라토너는 아니었다. 그의 진짜 직업은 육상 선수가 아니라 광산 엔지니어였다. 영국 왕립광업대학을 졸업한 휘틀록은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그 후로는 크로스컨트리마저도 그만두면서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엔지니어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이던 그가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건 마라톤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었던 열네 살 막내 아들 때문이었다. 휘틀록은 아들이 마라톤에서 빠져 나오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했지만, 결국 같이 뛰는 방법을 택했고 이 선택이 그의 노년을 결정했다. 1975년 아들과 함께 연습 없이 처음 도전한 마라톤에서 그는 3시간9분만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당시 그의 나이 44세였다. 4년 후에는 2시간31분23초로 본인의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장거리 달리기에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인다. 휘틀록은 1989년에 엔지니어로서의 직업적 삶을 정리하면서 마라톤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고, 이후 나이가 들 때마다 연령대별 최단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휘틀록은 73세였던 2004 토론토 마라톤에서 풀코스를 2시간54분83초만에 완주했는데, 그의 나이를 20세로 조정한다면 저 기록을 ‘2시간3분57초’로 환산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2008년 35회 베를린 마라톤에서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43ㆍ에티오피아)가 세운 세계최고기록이 2시간3분59초이고, 2011년 39회 베를린 마라톤에서 패트릭 마카우(31ㆍ케냐)가 경신한 세계최고기록이 2시간3분38초다. 스포츠에 ‘만약’이라는 가정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겠지만, 휘틀록이 ‘만약 2004년에 20세였다면’ 적어도 2011년까지는 마라톤 세계 기록 보유자였던 셈이다. 그는 이때부터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록스타’가 된다.
노화와 신체 능력에 관해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휘틀록이 “믿을 수 없는 신체를 가졌다”고 말한다. ‘메이요 클리닉’의 마이클 조이너 박사는 “그는 인간의 노화를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 휘틀록의 신체는 신장 170cm에 몸무게가 51kg으로 평범한 편이지만, 경이로운 지구력과 근육량을 가지고 있다. 4년 전 몬트리올의 맥길대학교에서 에드 휘틀록의 신체 능력을 검사한 결과, 그는 대학 운동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나이 대에선 압도적이고, 건강한 성인 남성과 비교해도 앞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조이너 박사는 휘틀록의 뛰어난 운동 능력에는 유전적 요소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유지하는 것”이 비결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고령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속에 열 세살의 소년이 아직 살아 있으며”,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활력”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조이너 박사는 “(휘틀록의 건강에는) 분명히 생물학 요인이 있고 그걸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그는 괴물이 아니다. 약간의 행운은 있었겠지만, 노화의 대부분은 의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당연히 휘틀록도 언제까지고 노화를 비켜나갈 수는 없다. 실제로 85세의 기록(3시간56분34초)과 73세의 기록(2시간54분48초)을 비교해보면 1시간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도 어깨, 무릎, 관절 그리고 사타구니의 통증으로 훈련을 방해 받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휘틀록은 “내 나이쯤 되면 노화 속도가 더 빨라진다. 나는 매년, 반년마다 그 차이를 느끼며, 일관되게 훈련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늙어가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휘틀록은 건강과 관계 없이 계속 뛸 예정이다. 여기에 무슨 대단한 이유가 숨어 있지는 않다. 그는 ‘러너스 하이(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지속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지칭하는 용어)’를 경험한 적도 없고, 건강을 위해 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휘틀록은 달리기 훈련이 힘들다는 것, 마라톤이 기쁨만큼이나 불안감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는 “기록을 세우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기뻐서”라고 자신이 계속 달리려는 이유를 솔직하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승선을 넘은 후 내가 해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쁨의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휘틀록의 다음 목표는 90세 이상 최단 기록이다. 2011 캐나다 워터프론트 마라톤에서 잉글랜드 출신의 파우자 싱이 100세의 나이로 8시간11분6초 만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지만, 출생기록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 등록되지는 않았다. 휘틀록은 “나는 장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90세에도 뛸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면서도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버스에 치일지도 모른다”며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정우진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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