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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탄핵테라피

입력
2017.01.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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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친구와 갈비탕을 먹었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다가 친구가 말했다. “탄핵테라피였어.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마음의 짐을 잔뜩 진 채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있는 일은 때로 공포다. 그럴 때 친구는 TV를 틀었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국정농단 뉴스에 친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무능한 대통령이 나올 때는 한없이 분노했다. “당장 내 일보다 이게 더 시급한 거야. 막 피가 끓어. 내 일은 다 까먹고 말야. 그래서 그 시절을 그나마 견뎠어. 이해가 가?” 아무렴, 이해하지. 나도 그런 적이 있는 걸. 아버지가 위암 선고를 받던 날, 나는 이불을 들쓰고 울었다.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었던 이별이 내 앞에 닥친 것 같아 나는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사람처럼 고통스러웠다. 엄마와 딸 셋 모두 그렇게 슬픔에 나자빠지는 바람에 오히려 아버지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수술이 막 끝난 아버지를 두고 나는 병원에서 신촌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거리는 고요했다. 2002년 월드컵 한국-이탈리아 전이 열리던 날이었다. 고요해서 더 외로웠던 내가 다시 입원실로 돌아왔을 때, 안정환이 골을 넣었다. 병원이 흔들릴 것 같던 사람들의 함성. 엄마가 너무 흥분해 보호자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아버지의 배를 손으로 짚어서 잠깐 소동이 일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은 정신없이 기뻐했다. 대장암 4기였던 옆 침대 아저씨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완쾌했고 15년이 지났지만 건강하다. 우리 가족은 두고두고 말했다. “그때 월드컵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 시절을 잘 지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안다. 월드컵테라피를 겪은 나니까 친구의 탄핵테라피를 왜 모르겠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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