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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30억 재력 가진 조현병 환자, 성년후견제 사각지대서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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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30억 재력 가진 조현병 환자, 성년후견제 사각지대서 신음

입력
2017.01.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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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봐 주겠다” 후견 청구한 친척

측근 아닌 전문가 그룹 지정되자

돌연 이의 신청 후 “안 하겠다”

임시 후견인까지 법적 자격 박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혼으로 남편과 자식이 없는 김모(56)씨는 초콜릿과 사탕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수년간 신용카드 대금과 아파트 관리비, 세금은 물론 폭행사건 벌금 등을 못 냈다. 5,000만원이나 됐다. 가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 시세 25억~29억원의 아파트 한 채와 경기 화성시에 5억원짜리 부동산 등 적어도 30억원의 재산을 보유했다. 이리 된 건, 김씨가 오랜 조현병(정신질환의 일종) 환자여서다. 20대 초부터 앓던 병이 혼자 살며 약물치료를 중단해 크게 악화됐다. 피해망상이 심해 경비원 등 이웃에게 공격적 성향도 종종 드러냈다.

2012년 유일한 가족인 김씨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등지자 친가와 외가 쪽 친척들이 앞다퉈 김씨와 그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후견인을 자청하며 법원을 찾았다. 김씨의 사촌동생 K(45ㆍ호주 거주)씨도 김씨에게는 먼 친척인 A(62)씨를 후견인 후보로 하는 성년후견개시심판을 2015년 11월 법원에 청구했다. K씨는 “(김씨) 친가 쪽은 모두 사망했고, 외가 쪽은 믿을 수 없어 A씨가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이 김씨를 1년 넘게 돌봤고, 과거 김씨 재산 18억원을 유용한 주변인 등도 알고 있어 관련 재판을 위해서라도 자신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김성우 판사는 1년여간의 장고 끝에 지난해 11월 김씨의 정신적 제약 정도가 혼자선 삶을 살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K씨의 청구를 인용했다. 다만, A씨가 아닌 성년후견 전문가그룹인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이하 후견지원본부)에 김씨의 신상과 재산 보호를 다 맡기며 한정후견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한정후견은 후견인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요양시설 입소 등 신상 결정권과 예금 처분 등 재산 관련 대리권을 성년후견보다 제한적으로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를 지켜주겠다던 사촌 K씨는 돌변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 결정 뒤 이의신청(항고)을 하더니, 급기야 지난달 23일 성년후견 청구 자체를 취하해버렸다. 이로 인해 법원의 정식 결정 전 김씨 처지의 심각성이 고려돼 임시후견인 자격을 얻어 지난해 8월부터 김씨를 돌봐주고, 재산관리 절차를 밟아오던 후견지원본부는 후견인 자격을 곧바로 잃었다.

친척의 이런 태도는 김씨 보호 목적보단 법적 대리권을 쥐고 김씨의 재산 처분 등 다른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의심을 산다. 애초 법원에서 밝힌 대로 김씨의 건강과 복리를 진정 염려했다면 취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후견 분쟁이 다소 생기더라도 신상보호는 집안에, 재산관리는 제3자에게 맡기는 법원 결정이 나는 경향이 있는데, 모조리 제3자에게 맡겼다는 건 김씨를 둘러싼 집안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김씨 친가와 외가는 2013~2014년 각각 서로 후견인을 자청했다가 기각됐다. 그들은 불복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갔으나 최종 기각됐다.

이는 현행 성년후견제의 명백한 ‘입법 구멍’이다. 청구인이 자기 뜻대로 법원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신청을 취하해버려서 김씨 같은 피후견인들이 방치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성년후견 사건의 90% 이상은 숨은 ‘재산 분쟁’때문에 생기는 점을 감안하면, 악용하려고 청구하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김효석 후견지원본부 상임이사는 “청구인의 의도나 편의로 취하되면 피후견인 보호에 큰 공백이 생긴다”며 “일본처럼 법원 허가를 받고 취하되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위기에 처했다. 입원치료와 관리비 등 처리는 물론, 김씨 앞으로 제기된 채권가압류 등에 후견인이 대응할 수 없게 됐다. 김씨의 BMW 차량과 현금을 가져간 이들을 상대로 한 소송 제기와 부친의 숨겨진 생전 재산 추적도 틀어지게 됐다.

김씨는 결국 검찰밖에 기댈 곳이 없다. 배우자나 친척 말고 검찰과 지방자치단체장도 현행법상 후견 청구를 할 수 있는데, 지자체는 매뉴얼 부재 등을 이유로 꺼린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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