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거짓말 한마디 때문에 격동하곤 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파리가 들끓을 때 루머 하나가 퍼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빵 값에 굶주린 파리의 하층민들이 “빵을 달라”며 연일 시위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향해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물정에 어두운 왕비라도 말을 그리 했을 리 없고, 역사적으로도 허구로 판명됐다. 하지만 당시 혁명세력은 그 거짓을 일부러 퍼뜨렸다. 그게 왕실에 대한 민중의 증오에 기름을 붓고, 그 증오가 혁명의 동력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 턱없는 거짓말이 나돌고, 사람들이 그것에 현혹되는 건 아직 미개했던 전근대적 현상만은 아니다. 정보기술(IT)의 눈부신 발달로 인류가 전례 없이 높은 지적 능력을 누리게 된 오늘날에도 거짓말은 여전히 역사의 현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첨단 매체 환경이 오히려 거짓말 유통을 촉진하고, 거짓말에 힘을 실어 주는 양상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불거진 ‘가짜 뉴스’ 문제는 터무니 없는 거짓이 선거까지 왜곡시키는 지경에 이른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일깨운다.
▦ 미국 대선 기간 중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 나돈 ‘가짜 뉴스’ 제목을 보면 이렇다.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 ‘힐러리 클린턴, 이슬람국가(IS)에 무기 판매’ ‘힐러리 클린턴, 아동 성매매 조직 운영’ 등이다. 트럼프 캠프에서 선거운동 차원에서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제는 온라인에서 이 같은 가짜 뉴스들이 진짜 주요 뉴스보다 더 많은 대중적 인기와 반응을 부르면서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도왔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 미국 대선을 계기로 가짜 뉴스의 치명적 해악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독일과 체코 등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정부 내에 가짜 뉴스를 색출하여 유포를 차단하는 전담조직을 잇달아 설립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왓츠앱 등 메시징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상시 검열을 추진키로 했단다. 우리나라도 SNS 가짜 뉴스에서 앞서면 앞섰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상시 유통되는 ‘지라시’도 그렇거니와, 선거 때면 기승을 부리는 흑색선전도 터무니 없이 왜곡된 경우가 많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새삼 가짜 뉴스의 범람이 걱정되는 이유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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