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놓고 벌이고 있는 미국 신ㆍ구 권력의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명령으로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이 대거 추방된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진영에선 러시아의 해킹 여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의도에 공개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날 미국에서 근무하던 러시아 외교관 35명이 민간 항공기편으로 워싱턴 D.C를 떠났다. 가족들을 포함, 총 96명이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관 추방은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달 29일 민주당 인사들의 이메일 해킹에 러시아가 연루됐다며 취한 보복 조치에 따른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 공관 시설 2곳 폐쇄, 해킹 관련 기관ㆍ개인에 대한 경제제재도 취했다.
미국 조치에 대해 보복이 예상됐지만, 러시아는 지난달 3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지시에 따라 맞대응을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의 선택은 친 러시아 정책을 표방한 트럼프 당선인의 입지를 넓혀 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트럼프 당선인도 오바마 대통령의 대 러시아 강경조치를 뒤집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31일 밤 플로리다 휴가지에서 일부 미국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의 해킹 의혹과 관련, 알려지지 않은 다른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음 주 정보기관 수장들을 만나서 구체적 얘기를 들어보겠다”고 밝힌 뒤 “그들은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는 허위 정보로 조지 W.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유도했던 장본인”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앞서 ‘맞대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푸틴 대통령을 ‘현명한 인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트럼프 진영은 신년에는 대응 수위를 한층 높였다. 러시아의 해킹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 오바마 대통령 조치가 차기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대변인에 내정된 션 스파이서 전 공화당전국위원회 홍보국장은 ABC방송에 출연해 “오바마 대통령의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 러시아 접근 정책을 견제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며 “외교적 대응인지 상대 정파에 대한 보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15년 발생한 중국의 미 정부기관 사이버공격 의혹 사건과 비교하며 “오바마 행정부의 대 러시아 조치는 전형적인 과잉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오바마 대통령의 대 러시아 보복 조치를 손쉽게 뒤집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이 이번 주 관련 청문회를 열 계획이며, 하원 정보위원회의 애덤 쉬프(캘리포니아ㆍ민주) 의원은 “오바마 행정부의 제재 수위가 약하다”며 “더욱 강도 높은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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