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2
HBO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여운은, 극이 끝난 뒤 이어지는 다큐멘터리 영상 화면을 통해 증폭된다. 늙은 전쟁 영웅 윈터스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말. 할아버지는 영웅이었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그는 “글쎄다. 분명한 건 내가 영웅들과 함께 싸웠다는 거야”라고 말한다. 아이는 당장엔 어리둥절했을지 모르지만, 자라면서 할아버지가 진짜 영웅임을 알게 되고, 또 저렇게 말해준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미국 101공수사단 506 낙하산 보병연대 2대대 E중대를 이끌며 2차대전을 치른 리처드 윈터스(Richard Winters)가 2011년 1월 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1941년 8월, ‘복무기간 단축을 위해’ 사병으로 입대했다가 사관후보로 선발돼 소위로 임관했다. 43년 유럽 전장으로 파병돼 이듬해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롯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의 여러 주요 전투를 치르며 어쩌다 보니 중대를 이끌게 돼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45년 11월 소령으로 예편했다.
민간인 윈터스는 사관후보과정 동기이자 전우였던 루이스 닉슨(대위 예편)의 비료회사에 취직해 50년 지배인으로 승진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듬해 다시 육군의 소집령을 받는다. 켄터키 포트캠벨의 11공수사단 소속으로 한국 전장에 파병될 예정이던 그는 워싱턴으로 가서 2차대전 101공수사단장 앤서니 매클리프(Anthony McAuliffe)를 만나 자신은 빼달라고, 전쟁이라면 이미 충분히 겪었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파병 대신 뉴저지의 포트딕스에서 신병훈련 교관을 맡았다. 그 일에 싫증이 난 윈터스가 특수전부대인 레인저스쿨(Ranger School)에 자원해 교육을 이수, 그 바람에 다시 한국전 배치 명령을 받지만 파병 직전 최종 의사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다시 전쟁을 피했다. 저 일화들이 알려지지 않은 건, ‘영웅’답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그는 48년 결혼한 아내(Ethel Estoppey, 2012년 작고)와 펜실베이니아에 정착, 농사를 짓고 작은 비료회사를 운영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그가 작고한 이듬해 6월 노르망디 생마리뒤몽에는 그를 모델로 한 2차대전 병사의 청동상이 섰다. 생전의 그는 노르망디 상륙전에서 싸운 모든 하급 장교들을 기리는 동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허락했다.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