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안 배제한 성장률 전망치가 2% 초중반 그쳐”
“대형 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작년보다 경기 안 좋을 것”
“경제 위기 요인 복합적으로 오는 ‘퍼펙트 스톰’ 걱정”
“긴 안목으로 대응 안하면 日 잃어버린 20년 전철 우려”
토론=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상명대 교수)
이종화 고려대 교수(국제경제학회장)
사회= 이영태 경제부장
새해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안팎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악재투성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다시 2017년 10년 주기의 위기가 또 덮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만큼 중요한 한 해가 될 거란 얘기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부 교수(한국개발연구원ㆍKDI 수석이코노미스트)와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국제경제학회장)는 한국일보와의 신년 특별 대담에서 공통적으로 새해 우리 경제를 좌우할 가장 큰 리스크로 정치 불확실성을 꼽았다. “가뜩이나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선 정국이 본격 열리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난무하면서 우리 경제가 정책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차분하게 긴 안목의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따라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다.
여러 위기 요인이 동시에 닥친다면
사회 =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높아야 2% 중반대입니다. 각종 기관들 중에는 2% 초반을 예측하는 곳이 많고, 심지어 2% 성장도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백웅기 교수 = 우울하지만, 기관들의 전망치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각종 기관들의 전망치에는 최근 벌어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파급이 거의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대내외 경제 상황만 고려해 계산이 된 거죠. 정치 불안 요인을 배제한 전망치가 2%대 초중반이라는 것은 몹시 우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 경제 상황이 2016년보다 안 좋을 거라는 건 이제 대세 전망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종화 교수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성이 크다는 건 우리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죠. 새해에는 국내만이 아니라 미국 신정부 출범을 비롯한 대외 이슈까지 산적해 있는데요. 이들 대내외 이슈들이 한꺼번에 몰아친다면 정말 2017년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힘든 한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 그렇다면 새해 우리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백웅기 = 그런 충격이 새해에 닥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봅니다. 과거 위기는 외환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죠.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3,700억달러를 넘습니다. 물론 절대 안심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외화 유출에도 버틸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이종화 = 위기는 보통 외환 부족, 재정 부족, 그리고 부동산 시장 버블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금융기관 도산 등 3가지 경로를 타고 옵니다. 비교적 충분한 외환보유액, 아직까지는 탄탄한 재정 건전성, 그리고 양호한 금융기관의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본다면 이들 영역에서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몰아치는 ‘퍼펙트 스톰’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새해엔 미국에서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통상 압력이 상당히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컨대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고요. 미ㆍ중 간 마찰로 새로운 경제 규제가 생기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수 차례 끌어올리면 강(强) 달러 현상이 심화돼 국내에서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과거와 같은 형태의 위기가 오진 않더라도 우리 정부가 대비해야 할 위기의 종류는 더 많아질 겁니다.
‘잃어버린 20년’의 초입에 선 2017년
사회 = 대내외 충격에 따른 위기보다도 우리 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우려를 낳는 대목입니다. 정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고 있는 걸까요.
이종화 = 따뜻한 물에 개구리를 넣어두면 개구리는 익어서 죽습니다. 그런데 개구리는 따뜻하니까 본인 몸이 익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습니다. 우리 상황이 딱 그래요. 우리 역시 출산율 저하,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가 점점 일본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부실 기업도 늘고 있고 가계부채도 목까지 차오른 상황이죠. 항아리를 벗어나야 살 수 있는데 이런 문제를 계속 지적하는 그룹만 있고 정작 긴 안목을 갖고 대응하는 그룹은 없어요. 지금처럼 국가 리더십 부재가 지속되고, 새로운 리더가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우리도 결국 일본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백웅기 = 20년 전 일본이 연 1.5% 안팎의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자산 버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이걸 만회하려고 재정 투입 등의 여러 정책을 썼지만 국가 부채만 크게 늘리고 별 효과가 없었죠. 저성장이 고착화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는 아직 일본처럼 자산 버블이 확 꺼지는 현상을 겪진 않았습니다. 성장률도 당시의 일본보다 1%포인트 가량 높죠. 그런데 일본보다 여건이 낫다고 해서 우리가 안심하는 건 정말 곤란한데요. 무엇보다 상황이 서서히 나빠지니까 뜨거운 물에 빠진 개구리처럼 당장 해결해야겠단 위기의식이 낮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종화 = 지금처럼 정부나 정치권이 넋을 놓고 있다가는 잠재 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잠식될 거라고 봅니다. 더구나 대선이 치러지는 새해는 정치의 해가 되면서 경제 문제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20년 전 일본보다 낫긴 하지만 일본보다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경기부양책, 도구보다 목표가 중요
사회 = 새해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정치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왔는데요. 다른 쪽에선 통화정책, 즉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경기 부양책이 필요할까요.
백웅기 = 한국은행이 추가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릴 여력은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현 시점에선 굉장히 조심스럽게 써야 할 카드라고 봐요. 턱밑까지 차 오른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죠. 최근엔 재정 정책이 상당히 중요한 경기 조절 정책으로 떠올랐는데요. 다른 나라들도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문제가 없진 않아요. 재정적자를 부추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그럼에도 올해 재정 조기 집행을 비롯한 추경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수가 워낙 침체된 측면도 있지만 그간 정부가 재정 지출 계획을 워낙 타이트하게 짜다 보니 추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사회 = 하지만 예산안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조달 방식도, 지출 용도도 정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추경 카드를 꺼내드는 게 맞는지는 의문입니다.
백웅기 = 정부가 예산 편성 방식을 좀 바꿔야 한다고 봐요. 이듬해 경제 전망치를 근거로 예산을 짜는데요. 정부가 전망을 다소 낙관적으로 하다 보니 예산이 너무 긴축적으로 편성되는 측면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추경 편성이 거의 연례행사가 되고 있는 건데요. 앞으로는 중립적 자세, 특히 네거티브한 측면까지 반영해 경제 전망치를 내놓아야 합니다. 다른 연구기관들보다 늘 상당폭 높게 전망치를 내놓는 것만 봐도 정부의 경제 전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종화 = 현대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불황이 왔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 불황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재정이 건전한 편이어서 추경 여력이 있어요. 다만 추경이 필요하냐 그렇지 않냐는 측면에서 벗어나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분명한 목표가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만 보더라도 일본은 정책 목표가 명확해요. 세 개의 화살이라고 불리는 양적완화, 신속한 재정정책, 그리고 장기 성장전략 등이죠. 곧 출범할 미국의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정책도 선이 분명해요. 적극적인 규제완화와 재정 집행으로 내수는 살리고 통상 정책으로 기업에 유리한 경제 상황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런데 한국은 경제를 어떻게 끌고가자고 하는 ‘베스트 메뉴’가 없습니다.
가계부채, 그리고 트럼프 리스크
사회= 새해에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를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시는지요.
백웅기 = 당장 겉으로 볼 때는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빚의 상당 부분을 상위 20%가 갖고 있고요. 게다가 부채는 그 자체로 자산인 만큼 빚의 규모만 보고 위험하다고 보는 해석은 무리가 있어요. 그러나 금리 인상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가계소득이 5% 하락하고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평균 원리금 상환액이 무려 14%포인트 올라간다고 나와 있습니다. 빚 갚는데 쪼들린 가계로선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정부가 아무리 내수 부양책을 써도 소비 위축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결국 우리 경제는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종화 = 최근 대출이 급격하게 불어난 2금융권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2금융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크게 늘렸는데, 건설 경기가 무너지면 이 여파가 그대로 2금융권에 전달됩니다. 가계 쪽에선 은퇴한 뒤 자영업 시장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이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 = 정부도 고정금리 대출 전환 대책을 앞세우는 등 여러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런 조치 만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백웅기 = 정부가 2014년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대출 규제를 모두 완화했죠. 그 뒤 가계대출이 급증했습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누그러뜨리려면 이 같은 규제 완화책을 점진적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출심사 강화를 통해 집단대출을 조이는 식의 추가 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쌓여 있는 대출을 어떻게 할 순 없지만 일단 신규 대출이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종화 = 정부는 ‘집 사라’고 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금리를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면 대출이 늘어나는 건 당연합니다. 앞으로는 좀더 강력한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도 촘촘히 세워야 하고요. 한계가구에 대해선 한시적으로 이자를 낮춰주는 식의 대책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 = 새해에는 대외 리스크도 만만찮게 도사리고 있는데요.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이종화 = 역시 트럼프 신정부 출범으로 우리나라가 상당한 통상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됩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경제 리더십도 공백기여서 여기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어요. 트럼프 당선인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언급한 만큼 멕시코 같은 나라는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멕시코에 우리나라 자동차 공장이 있는데, 나프타 재협상으로 미국으로 들어가는 멕시코 물건의 관세가 높아지면 우리의 수출 전선엔 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한ㆍ중간 마찰도 우리에겐 위험 요소입니다. 일본은 정부든 기업이든 트럼프 당선 후 자국 경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거든요. 일본 기업이 선제적으로 미국 물건을 사들인다든지, 미ㆍ러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자 일본 정부가 곧바로 러시아 정부와의 외교 정책에 더 힘을 쏟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우리도 대응을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린 이런 리더십을 발휘할 전략가가 없는 상황입니다.
우려되는 ‘정부 실패’
사회 = 대통령 탄핵으로 우여곡절 끝에 유일호 경제팀이 우리 경제를 다시 이끌게 됐습니다. 문제는 위기가 엄습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언제 대선이 치러질지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경제팀의 역할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유일호 경제팀이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백웅기 = 새로운 사업을 하긴 쉽지도 않거니와 현 시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그간 만든 시스템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부처 간 정책 조율을 하는 역할이 중요한데요. 그 동안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이 많지 않았습니까. 남은 기간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예산 집행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이종화 = 부총리, 금융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이 분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무엇보다 새로 바통을 이어받는 분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그간 벌여놓은 가계부채, 기업 구조조정과 같은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어 줘야 합니다. 철저히 리스크 관리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겁니다.
사회 =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부적절하다는 건가요.
이종화 = 그렇습니다. 불확실한 정책 리스크가 가뜩이나 갈길 바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대선이 치러지는 새해에 ‘정부 실패’가 가장 일어나기 쉽다는 거죠. 예컨대 이런 겁니다.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으로 대학에서 취업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졸업생들이 왜 중소기업은 기피하는지 등 문제의 근본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접근 방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놓는 식입니다. 이런 식의 불확실한 정책이 쏟아지면 우리 경제는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릴 겁니다.
백웅기 = 세계은행 등 국내외 기관들이 우리나라의 거버넌스(국정관리체계)나 규제의 질을 평가한 걸 보면 상당히 수준이 낮습니다. 이 문제는 그간 꾸준히 지적됐지만 지난 10년 동안 크게 개선되지 않았어요. 올해 대선을 겨냥해 각 주자들이 포퓰리즘 정책들을 쏟아내면 이 지표들은 또다시 크게 후퇴하겠죠. 그러면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써도 큰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기 때문이죠.
대선 주자들이 꼭 내걸어야 할 경제공약
사회 = 대선의 해입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특히 대선 주자들이 이것만큼은 반드시 내걸어야 한다는 경제정책 공약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백웅기 = 역시 대선 주자들이 내세울 포퓰리즘 정책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엔 대선 주자들의 공약들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봐요. 예전에 기획재정부가 각 대선주자들이 내건 공약을 이행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지 분석해 내놓은 적이 있어요. 정당들이 싫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 이런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또 지난 대선을 돌이켜보면 후보들이 경쟁력 있는 공약을 내세우기 보다는 성장률 수치만 부풀리는데 혈안이었어요. 그러니까 ‘747 공약(이명박 정부)’ ‘474 공약’(박근혜 정부) 등 허황된 수치가 난무하고, 북한(나진)과 러시아(하산)를 철도로 연결하는 식의 꿈 같은 공약이 쏟아진 거죠. 이번엔 대선 후보자들이 성장률 목표치를 경쟁적으로 내걸지 말고 본인의 경제 정책을 구체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이종화 =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건 포퓰리즘이 판을 쳤기 때문이에요. 정부 지출이 정치적 판단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돈은 써도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겁니다. 예컨대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이미 있는데 해당 지역 정치인 입김 때문에 다리를 하나 더 놓는 식이죠.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고 특정한 증세만 치료하는 대증요법에 매달리면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정치인은 경제 전문가가 아닙니다. 표를 위해 대증요법에만 매달릴 가능성이 높죠. 이번 대선 때 유권자들은 이런 부분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정부 예산으로 퍼주기 정책이 잇따를 수밖에 없거든요. 문제의 근본을 지적하고, 좋은 정책을 디자인하는 분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웅기 = 특히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저출산 고령화 이슈입니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여러 정책을 내놨지만 효과가 없어요. 출산율은 사상 최저치를 찍었어요.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후보들이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4차 산업혁명 대응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 부가가치는 드론, 인공지능(AI), 로봇 등에서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제시할 수 있는 분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사진=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백웅기 교수는
1955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나온 뒤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뒤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기획재정부 재정관리협의회 민간위원 등을 거쳐 현재는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최근 KDI의 연구 전 단계를 관할하는 수석이코노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종화 교수는
1960년 강원 태백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뒤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역임하는 등 국제 연구기관과 관을 두루 거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현재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경제학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